"신약은 원래 적자산업인데"…상폐 개혁에 바이오업계 우려
[상폐기로 K바이오]④ "단기 매출 쫓다 신약 개발 위축"
기술특례 취지 살리려면…"임상 단계·기술력 중심 평가체계 필요"
- 구교운 기자,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조유리 기자
"신약은 원래 적자산업입니다. 그 기간을 버텨야 10년, 20년 뒤가 있는 건데요."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오는 7월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 강화를 앞두고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좀비기업 퇴출과 투자자 보호라는 개혁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바이오산업의 특수성을 외면한 일괄 적용이 오히려 혁신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상장폐지 개혁방안을 발표하고 5월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다. 시가총액 기준 상향(150억→200억→300억원), 동전주 퇴출, 반기 완전자본잠식 심사 도입, 공시위반 벌점 기준 강화가 핵심이다.
증권가에서는 부실기업 퇴출을 통한 시장 신뢰 회복 효과를 기대한다. KB증권은 "기업들의 경쟁 유도를 통한 질적 수준 개선과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기대된다"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스1이 한국거래소 종목분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코스닥 제약·의료정밀기기 업종 230개사 중 21개사가 이미 시가총액 미달 또는 동전주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월 시가총액 기준이 300억원으로 추가 상향되면 13개사가 더 위험권에 들어간다.
업계는 제약과 바이오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제약회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나오는 제조업 성격이라 이번 요건 중 민감한 게 사실상 없다"면서도 "바이오벤처는 대부분 기술특례로 상장하기 때문에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술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5년 도입됐다. 기술력과 성장성이 인정되면 매출이나 이익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코스닥 상장이 가능하게 한 제도다.
실제 신약 개발은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산업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1999년 이후 허가된 국산 신약 38개를 분석한 결과 신약 1개 개발에는 평균 10.7년이 걸렸고 평균 423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오벤처는 구조적으로 자본잠식 위기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매출이 없으니, 영업이익도 나올 수 없는데 연구개발 인건비와 비용은 계속 들어간다"며 "파이프라인 하나당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 기간은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기업 20개사를 분석한 결과 5개사는 추가 자금 조달 없이 현재 보유 현금만으로 1년을 버티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40%인 8개사는 2년 치 현금도 부족했다.
문제는 퇴출 압박이 커질수록 자금 조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파이프라인을 보고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퇴출이 코앞에 닥치면 경영권을 노리는 곳이라도 일단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불투명한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개혁이 되레 파이프라인 과장이나 무리한 사업다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 시장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감지된다. VC 업계에서는 이미 현금 보유 규모와 파이프라인 진척도를 갖춘 기업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위기다. 상장폐지 요건이 강화될수록 현금이 부족한 기업들은 더 불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생태계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단순한 퇴출 기준 강화보다 바이오 특성에 맞는 상장 유지 기준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특례 상장 기업이 상장 2년 후부터 단기 매출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공모 자금을 혁신 기술 개발 대신 단기 수익 사업에 써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매출 중심 요건 대신 임상 단계 유지 여부, 기술수출 성과, 특허 포트폴리오 등 산업 특성을 반영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제약사 관계자는 "바이오기업은 현재 실적보다 미래 가능성에 투자하는 산업"이라며 "일반 제조업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자금조달과 시장 기능 면에서 역기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책을 악용해 본업과 무관한 기업을 인수하거나 불법 자금조달에 활용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정부도 바이오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산업 육성 방향과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ku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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