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 허들 낮추고 약가 깎고…정부, 제약·바이오 구조조정 정조준

동전주·시총 200억 미만, 7월부터 상폐 대상…코스닥 업체 무더기 퇴출 가능성
약가 인하 겹치며 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업계는 반발

ⓒ 뉴스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상당수가 이른바 '동전주'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규제가 시행될 경우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약가 인하 정책까지 더해질 경우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정부의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계 기업을 정리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해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업계는 "기술 잠재력을 단기적인 수치로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뉴스1이 한국거래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20일 종가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제약·바이오(헬스케어·의료기기·진단키트 등) 업체 중 거래 정지 상태를 제외한 동전주(주가 1000원 이하)는 32개사로 집계됐다.

코스닥 상장사로는 앱토크롬·씨엑스아이·디에이치엑스컴퍼니·케이바이오·본느·케이엠제약·네오이뮨텍·씨유메디칼·경남제약·휴럼·네오펙트·엠젠솔루션·우진비앤지·피플바이오·모아라이프플러스·텔콘RF제약·크레오에스지·휴마시스·뉴온·한국비티비·에스씨엠생명과학·씨엔알리서치·서울리거·큐라티스·화일약품·지엘팜텍 등 27개사다. 코스피 상장사는 메타케어·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에이프로젠·인스코비·오리엔트바이오 등 5개사다.

동전주는 아니지만 시가총액이 200억 원 미만인 기업은 세니젠·파커스 등 2개사다.

앞서 금융당국은 7월부터 동전주를 상장폐지 대상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동전주 기업은 일반적으로 펀더멘털이 취약하고 주가 변동성이 커 불공정 거래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금융당국은 내년 1월부터 시가총액 200억 원 미만의 코스닥 기업(코스피는 300억 원)을 상장폐지 대상으로 지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규제 강화 차원에서 올 하반기로 계획을 앞당겼다. 2월 20일 기준을 적용하면 제약·바이오 상장사 34곳이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된다.

올해 규제를 피했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내년부터는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이 코스닥 300억 원, 코스피 500억 원으로 상향된다. 2월 20일 기준으로 동전주가 아닌 시가총액 200억 원 이상 400억 원 미만 상장사는 22개사다.

매출 기준도 부담 요인이다. 시가총액 600억 원 미만 기업은 올해부터 매출액을 50억 원 이상 달성해야 한다. 동전주가 아니면서 시가총액 300억 원~600억 원 코스닥 제약·바이오 상장사 중 지난해 매출액이 100억 이하인 곳은 6곳으로 집계됐다.

상장폐지, 바이오 업계 직격탄 될 듯…주가 부양 안간힘

이번 조치는 특히 바이오 기업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는 34개사 중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 중심의 바이오 기업은 14곳이다.

신약 개발부터 파이프라인 구축 등에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는 업계 특성상 이들의 자본시장 의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대다수가 '기술 이전'을 주된 수익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장 폐지 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건 '낙인 효과'다. 대다수 업체가 기술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상장한 '기술특례상장기업'이라는 점에서 한번 상장 폐지가 이뤄질 경우 다시 제도권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기술특례상장기업은 총 171개사였는데 이중 101개사가 바이오 기업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 업계도 타격이 있겠지만, 바이오 업계의 경우 한번 상장폐지가 되면 다시 재기하기 어렵다"며 "바이오 업계에 있어 상장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업계는 올 상반기 동안 감액 배당,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등 주가 부양을 위해 총력전을 쏟을 테세다. 금융당국은 액면병합을 통해 형식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편법을 차단하기 위해, 병합 후에도 주가가 액면가보다 낮을 경우 상장폐지 요건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다.

약가 인하에 상장 폐지, 제약·바이오도 구조조정 수순…업계 "실패 용인하는 구조 돼야" 반발

철강·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계 역시 재편 수순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전주를 명분으로 삼아 부실 상장사를 정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어느 때보다도 유동성이 유입되는 상황인데, 시장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건 업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며 "바이오 잔혹사를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 인하 정책까지 현실화될 경우 업계의 줄폐업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으로 책정된 현행 복제약의 약가 상한선을 40%대까지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실제 시행될 경우 전통 제약사들이 직격탄을 받을 전망이다. 바이오 업체의 주된 고객층이 제약사라는 점에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연쇄적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업계에선 "가능성 있는 업체까지 사장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세 업체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은 인정하나,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시장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곧바로 퇴출 시키는 건 가혹한 처사"라며 "실패가 용인되는 산업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