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가격 40%대 인하 제동…업계 "한숨 돌렸지만 방심 금물"

건강보험심의위 소위 안건 상정 유예…3월 이후 재논의 전망
매출 3조 6000억 증발 우려 숨 고르기…7월 시행 여부 불씨 여전

한 시민이 서울 시내에 있는 약국에 들어가고 있다./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서상혁 기자 = 보건복지부가 이달 안건 처리를 목표로 삼았던 약가제도 개편안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상정을 유예했다. 복제약(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대폭 인하하려던 정부의 당초 계획이 제약바이오 업계의 거센 반발과 파급력 등에 따른 추가 의견 수렴 필요성에 부딪히며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정부는 제약바이오 업계와 소통을 거쳐 일정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신호이자 한숨 돌렸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정부의 강행 의지가 강력한 만큼 방심은 금물이라는 태도에 기반을 두고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할 전망이다.

'약가 인하' 중심 개편안, 건정심 소위 안건 상정 유예

23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일 건정심 소위원회에 복제약 가격 인하를 주 내용으로 담은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심의 안건으로 올리지 않았다.

복지부는 소위에 해당 개편안을 상정해 세부 내용을 조율한 후 오는 25일 예정된 건정심 본회의에 상정해 개편안을 최종 의결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소위 단계에서부터 안건 상정을 유예하면서 정책 강행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건정심은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과 비용 등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안건이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정책 시행이 어려울 수 있다.

안건 상정이 보류된 배경은 해당 정책이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 등을 고려해 추가적인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개편 방향을 처음 공개한 이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이 참여한 '제약바이오 산업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제약 비대위) 등이 제기하는 우려와 반대 의견에 직면해 왔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강행보다는 현장의 실무적인 의견을 듣고, 세부적인 개선안의 수위와 약가 우대 적용 기준 등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등 관계 기관과 실무진 협의를 거쳐 이르면 오는 3월 열리는 회의 테이블에 해당 안건이 다시 상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 A는 "산업계 충격 완화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이고 단기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정책을 강행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기조는 정해진 거라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산업 비상대책위원회와 각 기업 노동조합위원장이 모여 '약가 제도' 개편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뉴스1 황진중 기자
매출 3조 6000억 증발 위기 지연…생태계 파괴 우려 지속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으로 책정된 현행 복제약의 약가 상한선을 40%대까지 일괄적으로 대폭 낮추는 것이다.

복지부는 국내 제네릭 약가가 주요 선진국 등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 높게 형성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등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약품비 절감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투입되는 신약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복제약 중심 사업에 집중한다는 의식에 기반을 두고 강력하게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는 복제약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며 산업 기반을 지탱하는 근간인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해 왔다. 현행 제약바이오 업계의 수익 구조상 복제약을 통해 창출된 이윤이 신약개발을 위한 R&D 자금으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어서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약가 산정률 하락 시 연간 약 3조 6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매출이 증발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신약 R&D에 필요한 핵심 투자금의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생산 현장을 비롯해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제약바이오 산업 노동자의 대규모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 B는 "건정심 상정이 미뤄진 것은 업계의 의견을 더 듣겠다는 신호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약가를 인하하겠다는 정책의 방향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면서 "약가 인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영과 R&D 투자 계획에 직결되는 만큼 향후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기업 주요 관계자가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뉴스1
7월 시행 여부·합리적 인하 폭 조정·R&D 우대 등 쟁점

정부와 업계의 갈등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업계는 복지부가 약가 인하라는 제도 도입 자체를 전면 백지화한 것이 아니라 현장 의견 수렴을 위한 일시적인 시기 조정을 택했다고 본다.

세부 인하 폭과 적용 대상 범위를 재정비해 다시 정책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초 계획했던 올해 7월 정책 시행이라는 목표 일정을 정부가 그대로 고수할지, 아니면 제도 시행 시기 자체를 탄력적으로 연기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사업 계획을 수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충분한 유예 기간을 부여할지가 향후 가장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제약바이오 업계 내부에서는 심사 일정을 몇 달 지연시키는 표면적인 조치에 안도하기보다는 세부적인 개선안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약가 인하 정책이 신약 혁신 생태계로의 체질 개선을 돕기보다는 도리어 의약품 자급률을 떨어뜨리고 감기약 품귀 현상 등에서 겪었던 국가 보건안보와 직결되는 제약 주권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생산과 연구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단계적인 인하 접근 방식과 국산 원료 의약품 사용 장려,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실효성 있는 약가 우대 보상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 C는 "복지부가 이번에 약가 개편 안건을 소위에 올리지 않은 것은 약가 인하 시행을 앞두고 합리적인 의견을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판단돼 다소 긍정적으로 보인다"면서 "정부와 산업계에 좀 더 합리적인 의견 수렴을 위한 시간을 추가로 가졌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다양한 소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