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낀 약가 개편 드라이브…업계 "정밀 보상체계 필요"

약가 제도, 신약개발 '혁신 생태계' 조성 목표로 추진
"구체적 비율·인센티브 담은 개편안 발표 지켜봐야"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유한양행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R&D 투자 연동형 약가 보상 체계' 도입을 예고했으나, 세부적인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개편에는 약가 통제를 넘어 산업 생태계의 반응을 고려한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D 투자비 연동형 약가 가산' 추진…업계 "예의주시"

2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약가제도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를 개편하기 위해 'R&D 투자 비율 연동현 약가가산' 제도 등의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의 일괄적인 약가 인하 정책에서 벗어나 혁신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앞서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은 "약가 제도 개선의 목표는 재정 절감이 아닌 혁신 생태계 조성"이라며 R&D 기업에 대한 보상 확대를 강조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의 방향성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으로 R&D 비율을 얼마나 높여야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이 아직 발표되지 않아서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약가 제도를 개선한다고 발표했지만, R&D 비율에 따른 구체적인 지원책이나 수치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업계에서는 세부 사항이 나올 때까지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개발 특성상 예측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불확실성만 높아졌다는 의미다.

업계는 국내 낮은 약가가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는 '코리아 패싱'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국가들이 우리나라 약가를 참조해 자국 수입 가격을 책정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 약가가 낮게 책정되면 수출 가격도 덩달아 낮아져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약가가 낮은 우리나라보다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미국 시장을 우선시하는 사례가 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혁신신약에 대한 적정한 가치 보상 없이는 'R&D 선순환'이라는 정부의 의지가 충족되기 어려울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봐야 정책의 실효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후속 조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신약개발을 위한 물질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SK바이오팜 제공)/뉴스1
해외서 'R-zone' 유연성 확보…"정교한 보상 체계 중요"

전문가와 업계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R&D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해 약가 제도에 유연성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요한 과제로 꼽히는 것은 '합리적 조정 범위'(R-zone) 도입이다.

일본과 대만 등은 실거래가 조사를 기반으로 약가를 조정하지만, 제약바이오 기업이 의약품을 유통하고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진을 인정해 주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일본은 도매가중평균가에 소비세, 인하 전 고시가의 2%에 해당하는 조정 폭(R-zone)을 더해 약가를 산정해 과도한 인하를 방지한다. 대만 역시 고시가와 실거래가 차이의 15% 범위에서는 약가를 인하하지 않는 범위를 운영해 제약사의 저가 공급 유인을 보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완충 지대 없이 실거래가와 고시가의 차액을 그대로 약가 인하에 반영하고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약개발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일본은 '가격 유지 프리미엄'(PMP) 제도를 통해 혁신적 신약이나 희귀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약가 인하를 유예하거나 인하 폭을 제한함으로써 기업이 개발 비용을 회수하고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안정훈 이화여대 교수는 "기업의 R&D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예측할 수 있고 일관된 약가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라면서 "사후 약가 관리 제도 시행 시기를 통합해 기업의 행정적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이고,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에 한국형 R-존을 도입해 저가 공급 유인과 재정 관리의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