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디지털헬스, 기기보다 문해력이 먼저다[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더욱 분명하게 체감하게 됐다. 병원 예약은 스마트폰으로 이뤄지고, 처방전과 진료 안내는 키오스크나 전자문서로 확인한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과 혈당, 심박수는 앱을 통해 의료진에게 전송되며, 인공지능(AI)은 축적된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 위험을 예측한다. 디지털은 이제 더 이상 선택적인 편의가 아니다. 의료와 돌봄에 접근하고, 일상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본 인프라가 되고 있다.

초고령사회, 디지털 헬스는 새로운 의료·돌봄 인프라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디지털 헬스가 있다. 디지털 헬스는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loT), 웨어러블 기기, 모바일 앱 등을 활용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의료·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다.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건강을 지속해서 확인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2025년 1월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한 관람객이 스마트 전신 거울을 통해 건강 체크를 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신웅수 기자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격차도 커지고 있다. 바로 디지털 헬스 문해력의 격차다. 디지털 헬스 문해력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기기의 버튼을 누를 줄 아는 능력이 아니다. 필요한 건강정보를 찾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자신의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정보가 믿을 만한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사용자가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판단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실제로 키오스크 사용 교육을 받은 후 자신 있게 햄버거를 주문한 고령자가 결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30개의 햄버거를 받아 노인복지주택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다. 웃고 넘길 수 있는 일화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가볍지 않다. 기기의 기본 조작법은 배웠지만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은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이 금융거래나 의료서비스에서 발생한다면 재산상 손실이나 심각한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기기 조작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판단 능력

의료 분야에서 디지털기기 사용 오류는 특히 위험하다. 고령자가 약 복용 알림을 잘못 이해해 이미 먹은 혈압약이나 당뇨약을 다시 먹거나, 아침 약과 저녁 약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다. 건강관리 앱의 복약 기록이 실제 복용 여부와 다르더라도 이를 그대로 믿으면 중복 복용이나 복용 누락이 발생할 수 있다. 가정용 혈압계의 커프를 잘못 착용하거나 측정 전 충분히 쉬지 않으면 실제와 다른 수치가 나올 수 있다. 그 결과를 믿고 환자가 임의로 약을 더 먹거나 중단하면 저혈압, 낙상 또는 심혈관계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디지털 헬스 교육은 기계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보다 왜 이 기능을 사용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언제 전문가에게 알려야 하는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

특히 고령자 교육은 반복적이고 체험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한 번의 집합교육이나 설명서 배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약 복용, 병원 예약, 혈압·혈당 측정, 응급 알림 확인 등 실제 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반복 연습이 이뤄져야 한다. 글자 크기와 화면 구성, 음성 안내, 오류 취소 기능도 고령자의 시력과 청력, 인지기능을 고려해야 한다.

돌봄 종사자의 디지털 헬스 문해력도 함께 높여야 한다.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은 고령자가 새로운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돕는 가장 가까운 지원자다. 혈압계, 스마트워치, 낙상 감지기, 복약 관리기기, IoT 구강 관리기기 등은 결국 돌봄 종사자의 관찰과 설명, 관리가 뒷받침돼야 제대로 작동한다.

디지털기기 보급 넘어 상시 교육·지원체계 구축해야
한 어르신이 인공지능(AI) 번역 기능을 활용한 통화법을 배우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유승관 기자

정부는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반 의료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기와 플랫폼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디지털 헬스 정책이 완성되지 않는다. 기기를 지급한 뒤 누가 사용법을 교육할 것인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인지기능이 저하된 고령자를 누가 지원할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 문해력 교육을 노인복지관이나 일회성 정보화 교육에만 맡겨서도 안 된다. 보건소, 의료기관,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시설,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가 연계된 상시 교육·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을 담당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돌봄 종사자 교육과 장기요양기관 평가에도 디지털 헬스 활용 역량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의료기관에도 책임이 있다. 고령자가 사용하기 어려운 서비스를 만들어 놓고 사용자의 역량 부족만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화면과 용어, 결제·복약·측정 오류를 방지하는 확인 절차, 보호자 연계 기능,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수단을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고령자와 장애인, 돌봄 종사자가 참여하는 사용자 중심 설계가 필요하다.

개인정보와 안전에 관한 보호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고령자는 건강정보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나 앱을 공식 서비스로 오인하거나, 동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민감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헬스 확대 정책은 개인정보 보호, 허위 정보 차단, 기기 정확성 검증, 사고 발생 시 책임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

디지털 소외는 이제 단순한 정보 격차가 아니다. 병원 예약을 하지 못하고, 건강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는 곧 의료 접근성의 격차이자 건강권의 격차다. 디지털 헬스가 확대될수록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건강 격차가 오히려 커질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의 출발점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용자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히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디지털 대전환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정책의 기준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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