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비대면진료의 다음 장-의료 마이데이터와 AI가 여는 만성질환 케어
선재원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나만의닥터 대표)
비대면진료가 우리 일상에 들어왔다. 감기 기운이 도는 저녁, 아이의 갑작스러운 발열, 환절기마다 올라오는 피부 트러블 같은 순간에 화면 너머의 의사를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빠르게 확산된 비대면진료는 이제 의료 접근성을 넓히는 새로운 채널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다만 아직 충분히 닿지 못한 영역이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처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이런 환자를 진료하려면 의사는 과거 건강검진 결과, 복용 중인 약, 합병증 이력, 검사 수치의 추이까지 파악해야 하는데, 비대면진료에서는 이 데이터를 깊이 있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기술이 '의료 마이데이터'다. 금융에서 먼저 자리 잡은 마이데이터는 누적 가입 1억 6500만 건, 정보 전송 1조 건을 넘어서며 이미 일상이 됐고, 2025년 3월부터는 의료·통신 분야에도 전송요구권제도가 시행됐다.
그 핵심 인프라가 보건복지부의 '건강정보 고속도로'다. 202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상급종합병원 47개 전체를 포함한 1263개 의료기관이 데이터를 제공한다. 환자는 자신의 병원·약국 방문 이력, 처방 의약품, 예방접종, 건강검진 결과를 한 곳에서 조회하고, 본인 동의하에 의료진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의료 이력이 환자를 따라 움직이는 구조가 마이데이터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AI가 결합하면 또 한 번의 혁신이 일어난다. AI가 환자의 이력을 읽어 검사 수치의 추이를 정리하고, 의사가 놓치기 쉬운 위험 신호를 짚어내며, 환자에게 맞춤 가이드를 제안한다. 진료실 안의 진료와 진료실 밖의 데일리 케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런 결합이 작동할 때, 우리는 '의료의 본질적인 변화'를 마주한다.
먼저, 환자의 평생 건강 이력을 기반으로 진료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와 자기 병원의 단편적 기록만으로 판단해 왔다. 그러나 마이데이터가 자리 잡으면 10년 치 검진 결과, 다른 병원의 처방, 영상 판독 이력까지 한 화면에서 본 채로 진료할 수 있다. AI는 그 방대한 이력에서 사람이 놓친 패턴을 읽어 약물 상호작용이나 잠재 위험을 먼저 짚어준다. 같은 5분의 진료라도 판단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 변화는 진료실 밖으로도 이어진다. 새 병원을 찾을 때마다 병력을 처음부터 설명하던 시간도, 이미 받은 CT·MRI를 다시 찍는 비용도 사라진다. 영상검사 한 건이 수십만 원을 웃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환자가 줄이는 부담도 건강보험이 아끼는 자원도 작지 않다.
또한 진료가 끝나도 환자 케어는 지속된다. 지금까지의 의료는 환자가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함께 끝났다. 하지만 이제는 혈압·혈당·복약 이력·활동량이 매일 AI에 쌓이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단·운동·복약을 관리한다.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보호자에게 먼저 알릴 수도 있다. 의사는 다음 진료에서 이 데이터를 이어받아 처방을 조정한다. 만성질환은 평생 짊어지는 짐이 아니라 매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된다.
이런 변화는 우리만의 그림이 아니다. 핀란드는 2010년 'Kanta(칸타)' 시스템을 도입해 전 국민이 자기 의료 데이터를 직접 관리·공유하게 했고, 2021년 기준 근로연령 인구의 90% 이상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미래는 우리 안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메라키플레이스가 운영하는 비대면진료 서비스 '나만의닥터'는 ICT 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마이데이터 기반 비대면진료를 제공해 왔고, 보건복지부로부터 'AI 홈닥터' 서비스에 대해 '특수 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여기에 마이데이터 기반 AI가 결합하면, 일회성 진료를 넘어 만성질환을 일상에서 함께 관리하는 서비스로 나아갈 수 있다.
비대면진료는 이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그다음 장에서 의사는 작은 화면 안에서도 환자의 10년 치 이력을 함께 읽고, 환자는 진료실 밖에서도 자신의 데이터에 기반한 건강 관리를 이어간다. 단순한 진료의 도구였던 비대면진료가 여러 인프라와 접합되면서 이제 한 사람의 평생을 함께 지키는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비대면진료의 다음 장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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