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준비된 노후]고령자를 위한 필수교육, 건강 문해력을 아시나요?

김현정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치과병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김현정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을 잘 다루실 필요 없어요. 어려우면 자녀들이 해드리면 되죠.”

종종 들리는 말이다.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은 디지털 시대에서 고령자를 소외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으로 병원 예약을 못 하고, 약국 위치를 몰라 헤매는 일이 생겨도 “몰라서 못 했다”는 말로 지나간다. 고령자 자립이 아니라 보호 중심 사회라는 역설, 그 중심엔 고령자의 디지털 문해력 결핍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디지털은 ‘선택’이 아닌 ‘전제 조건’이다. 공공서비스와 병원접수가 모바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고, 키오스크 없는 관공서나 식당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으면 병원도, 식사도, 은행 일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일부 실버타운에서는 고령자 디지털 교육을 실시한 뒤, 보이스피싱이나 햄버거 30개 오주문 같은 ‘웃픈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에피소드들은 ‘사용법’을 몰라 생기는 일이 아니다. 사회가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고령자일수록 제대로 된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 더 중요하다.

건강 문해력(health literacy)은 또 다른 벽이다. 수많은 건강보조식품, 상반된 의료 정보 속에서 무엇이 검증된 지식인지 알기 어렵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 과학 기반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웹 콘텐츠의 양이나 전달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건강에 대해 정확히 알기보다, ‘너무 알면 괜히 불안해진다’는 식의 무지가 오히려 위안이 되는 현실이다. 병원에서도 △환자가 충분히 질문하기 어려운 환경 △의사와의 짧은 진료 시간 △대기 환자 눈치 등이 헬스 문해력의 장벽을 만든다.

'디지털·건강·약물·구강건강·장수문해력' 고령자의 건강한 삶에 꼭 필요

고령자 다제약물 문제도 심각하다. 5가지 이상 약을 장기간 먹는 고령자가 절반을 넘지만, 정작 약 이름이나 복용 목적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지럼증, 구강건조, 낙상, 인지 저하 같은 일상 불편이 약물 부작용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많이'가 아니라 '맞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약물 문해력(medication literacy)의 핵심이 현장에서는 부재하다.

구강건강 문해력(oral health literacy)은 가장 소외된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하루 세 번, 식후 3분 이내, 3분간 칫솔질을 강조하지만, 미국치과의사협회(ADA)는 하루 두 번, 2분 이상, 하루 한 번 치실 사용을 권장한다. 치아 구조나 연령에 맞는 칫솔질 방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드물고, 치약은 의약외품으로, 사용 후 6~7회 이상 충분히 헹구는 것이 권장 용법임에도 불구하고, “칫솔질 후 치약을 헹궈야 하나?”는 질문에도 치과의사마다 답이 다르다.

결국 구강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어떻게’에 대한 교육은 비어 있다. 잇몸 출혈, 구취, 씹기 어려움은 흔히 나이 탓으로 여겨지고, 치과 진료는 비용과 이동이라는 이중 장벽에 가로막힌다. 저작력·삼킴 기능 저하, 구강건조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구강 노쇠(oral frailty)는 곧 영양실조, 낙상, 사회적 위축으로 연결된다. 다행히 금년부터 요양시설 평가지표에 연 2회 이상 구강관리 교육이 포함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또한 100세 장수 시대라고 말하지만, 고령자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장수 문해력(longevity literacy)은 어떤가? 장수 문해력의 출발점은 거창한 미래 설계가 아니라, 규칙적 식사, 올바른 구강관리, 적절한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금연·절주 등 오늘 하루의 습관에서 시작된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식사, 수면, 운동, 구강관리 습관은 단순한 의지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고령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실패 경험, 신체적 제약 등으로 인해 새로운 습관 형성에 소극적일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은 ‘의지’보다 ‘환경’과 ‘반복’에 의해 바뀐다. 작고 구체적인 목표부터 시작해,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하고, 주변의 긍정적 피드백을 받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식후 칫솔질과 함께 치실과 치간칫솔 및 구강세정기 사용, 하루 10분 걷기, 취침 전 휴대폰 끄기 같은 행동을 ‘루틴’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고령자의 ‘준비된 노후’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가? 특히 디지털, 건강, 약물, 구강건강, 장수 등의 다섯 가지 문해력은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지식 영역이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자립 역량이다. 디지털 활용 교육, 약물 등 건강 상담, 인생 설계 및 구강관리 교육 등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권리다. 이 권리를 함께 존중하고 뒷받침할 때, ‘준비된 노후’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현실이 될 수 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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