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때문에 치료 포기 없게"…축농증 치료 새길 연 한국 의사 [K-메디컬리포트]
코점막 산성화 유발 '수소-칼륨 펌프' 발견…새 치료 표적 제시
값비싼 치료 문턱 낮추기 위한 집념…치료 패러다임 변화 기대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환절기마다 반복되는 코막힘과 맑은 콧물, 혹은 몇 년째 머리를 지긋지긋하게 짓눌러온 부비동염(축농증) 고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늠하기 어렵다. 통증 그 자체보다 삶의 질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식욕과 수면, 집중력마저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다수 환자가 대학병원에 가면 단번에 완치되는 치료법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상급종합병원의 문을 두드리지만, 현실은 완치가 아닌 평생 조절하며 살아야 하는 질환이라는 진단과 마주한다는 점이다. 특히 수술을 받아도 포도송이 같은 물혹(비용종)이 다시 자라나 2차, 3차 재발 수술을 반복해야 하는 난치성 만성 비부비동염 환자들의 절망감은 깊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난치성 만성 비부비동염의 기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환자의 경제적·신체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이비인후과 분야에서 최고 권위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올로지컬 소사이어티'(The Triological Society)로부터 '에드먼드 프린스 파울러 상'(Edmund Prince Fowler Award)을 수상한 민진영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그 중심에 서 있다.
1971년 제정된 이 상은 매년 전 세계에서 제출되는 이비인후과 기초연구 논문 중 가장 우수한 단 1편에만 수여된다. 국내 의료진으로는 역대 두 번째이며, 비(코)과 분야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쾌거다.
민 교수는 '제2형 염증 관련 기도 산성화에서 비위형 수소-칼륨 펌프: 비용종 동반 만성 비부비동염과의 연관성' 논문을 통해 만성 비부비동염의 새로운 발병 기전을 규명하고 현실적인 맞춤형 치료 전략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이토록 연구에 집착한 이유는 현장에서 마주하는 난치성 환자들의 깊은 절망감 때문이었다.
부비동염은 수술을 완벽하게 마쳐도 점막 자체의 면역학적 기전에 의해 염증과 물혹이 끊임없이 재발하기 일쑤다. 이 같은 재발성 염증을 억제하기 위해 최근 의료 현장에는 특정 염증 인자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생물학적 제제'(듀피젠트 등)가 등장했다.
문제는 턱없이 높은 문턱이다. 제2형 염증을 주도하는 면역 세포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주지만,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제한적이어서 한 달에 150만 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2주마다 꼬박꼬박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동반된다.
민 교수의 연구는 바로 이 초고가 약제와 잦은 내원 부담 탓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미국 유학 시절 들었던 소화기내과 강의였다.
민 교수는 "미국 연수 시절 위산 역류증을 강의하시던 소화기내과 선생님이 '위산은 단순한 산(Acid)의 문제가 아니라 코나 천식의 면역·염증 반응과도 연결돼 있다'고 설명하셨던 게 나중에 문득 떠올랐다"라며 "그 기억을 계기로 '소화기계에 있는 수소-칼륨 펌프(H,K-ATPase) 단백질 분자가 혹시 코에도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재미 삼아 연구를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기초 실험에서 실제 코점막 내 '비위형 수소-칼륨 펌프'의 존재와 함께 이 펌프가 기도를 산성화시켜 염증을 악화시키는 발병 기전이 밝혀졌다. 이로써 코점막 내부의 '산성화 펌프'라는 새로운 치료 타깃을 규명해 낸 것이다.
민 교수는 이 펌프 작용을 막아주는 약제가 이미 소화기내과에서 위 보호제 등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안전하고 저렴한 약제들을 조합하는 독창적인 ‘칵테일 치료 전략’의 기틀을 마련했다. 실제로 그는 외래 진료에서 처방이 필요한 경우 이 펌프를 타깃으로 하는 위 보호제를 함께 조합해 처방하는 등 기초 연구의 성과를 실제 임상 현장으로 연결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틀을 바탕으로 민 교수가 제시하는 '맞춤형 칵테일 약물 치료'는 거창한 단일 신약에만 기대는 개념이 아니다. 여러 재료를 섞어 최상의 맛을 내는 칵테일처럼 작용 기전이 서로 다른 안전하고 저렴한 기존 약제들을 환자의 상태에 맞게 '조합해 처방하는 치료 전략'이다.
한 달에 150만 원이 넘는 초고가 생물학적 제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델에서 벗어나 기존 약제를 보조 치료(Adjuvant therapy)로 함께 써서 환자의 경제적·신체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겠다는 구상이다.
민 교수는 "단 하나의 약으로 난치성 질환을 단번에 완치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며 "환자에게 장기간 반복 투여해도 부작용이 없고 금전적 부담이 없어야 복약 순응도가 높아지고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해진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그가 연구를 이어가는 가장 큰 동기는 환자들이 되찾는 '소소한 일상'이다.
민 교수는 "30년 넘게 냄새를 못 맡다가 치료 후 다시 와인 향을 느끼며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신 50대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라며 "부비동염은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은 아니지만, 매일 숨을 쉬고 냄새를 맡는 일상 자체를 무너뜨려 삶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비인후과 분야, 특히 비부비동염은 중증 질환에 비해 연구 지원 인프라가 부족하고 저렴한 약물 조합 전략은 제약사의 상용화 임상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민 교수는 뜻이 맞는 동료 학자들과 정기 모임을 이어가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민 교수는 "초고가 생물학적 제제가 너무 훌륭한 약인 건 분명하다. 이 약과 싸워서 이길 생각도 없고 정말 좋은 약"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다만 꿈꾸는 건 이 훌륭한 주사를 매번 비싸게 맞지 않아도 되도록 투여 간격을 넓혀주고 환자의 경제적·신체적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 치료법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거대한 신약 개발보다 당장 환자들이 부담 없이 숨을 쉬고 소소한 일상을 되찾게 돕는 것이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끝까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