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닥터나우 방지법' 시행도 전인데…사회적 합의 팽개친 정부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9개월을 끌어온 법안으로 플랫폼의 유통 독점에 겨우 브레이크를 건 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약 배송 전면 확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가 연출한 모순된 장면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약사법 개정안,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의약품 도매업을 겸영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었다. 특정 플랫폼이 약국을 거느리며 시장을 뒤흔드는 일만큼은 막자는 취지다. 거대 플랫폼의 세 확장에 일단 제동이 걸리면서 보건의료계도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같은 날 복지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비대면 진료 성과 및 향후 계획'이 판을 뒤흔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가 처방약을 배송받을 수 있도록 약 배송 대상을 전면 확대하고, 플랫폼에 약국의 의약품 구매·조제 수량 정보까지 넘겨주는 체계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정부가 보도자료에 직접 적어 낸 대목이다.
올해 말 비대면 진료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됨(12.24 의료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일부 대상자(섬·벽지, 장기 요양수급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 약 배송이 허용될 예정으로, 현재 정부는 가까운 동네약국 중심으로 약 배송을 허용하되, 비대면 진료 전담 약국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하위법령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바로 그 시점에, 한편에서는 "모든 환자로 약 배송 확대를 논의하겠다"며 법의 테두리를 허무는 발상을 내놓은 셈이다.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경기 규칙부터 바꾸겠다는 이러한 섣부른 행보는 결국 여야가 9개월간 논의 끝에 합의한 개정 법률의 취지를 시행도 전에 뒤집는 것과 다름없다.
대한약사회도 즉각 들고일어났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9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의약품 배송 전면 확대 방침을 "영리 플랫폼을 위한 독단적 폭주"라고 규정하며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12월 시행될 개정법을 고도화하기도 전에 판을 뒤엎으려는 정부의 태도가 보건의료계의 불신을 자초한 꼴이다.
약 배송을 전면 확대하는 문제는 결코 단순한 '편의성'의 영역이 아니다. 약은 택배 상자에 담겨 오는 일반 공산품이 아니라 오남용될 경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특수 재화다. 약사의 직접 복약지도와 처방 검토라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약화한 상태에서 배송만 일상화된다면 비급여 의약품 오남용이나 배송 중 변질 사고가 터졌을 때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이 되겠는가.
게다가 시범사업 기간 내내 지적돼 온 비급여 의약품 오남용 실태나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 분석조차 제대로 제시된 적이 없다. 공적 전자처방전 같은 기본 인프라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속도전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국회가 9개월 만에 '닥터나우 방지법'을 통과시킨 본질은 분명하다. 국민 건강과 안전이라는 보건의료의 기본 원칙을 영리 플랫폼의 논리에 내주지 말라는 경고다. 그러나 정부가 한 손으로는 시장 질서를 잡겠다면서, 다른 손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전면 확대라는 선물을 플랫폼에 안겨주려 한다면 정책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미완의 하위법령 뒤에서 조급하게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다. 12월 시행되는 개정법과 하위법령을 현장에 안착시키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검증해 나가는 정공법이 필요한 때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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