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환자 유형별 최적 동물모델 찾았다…신약개발 정확도↑
인간·설치류 뇌 조직 1056개 전사체 분석…세계 첫 객관적 검증
해마경화증 유무 따라 적합한 모델 달라…전임상 연구 효율 향상 기대
- 구교운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질환 유형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동물모델을 객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연구의 정확도와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세대 의과대학은 김준호 신경과학교실 임상강사와 이상보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연구원이 참여한 연구팀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해 난치성 뇌전증 유형별로 적합한 동물모델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김 임상강사와 이 연구원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했다. 김상우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와 김원주 신경과학교실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를 맡았다.
난치성 뇌전증은 약물치료에도 발작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다.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 동물을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전임상 연구를 거쳐야 한다. 전임상 연구는 새로운 치료제를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세포나 동물을 이용해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어떤 동물모델이 실제 환자의 질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연구자의 경험에 의존해 동물모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팀은 인간 뇌 조직 샘플 694개와 마우스·흰쥐 등 설치류 모델의 뇌 조직 샘플 362개를 통합해 대규모 전사체 분석을 진행했다.
전사체는 세포 안에서 발현되는 유전자 전체의 집합이다. 질환이 발생하거나 진행될 때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자 수준에서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연구팀은 동물의 종과 뇌전증 유도 방법·유도 약물 투여 경로·병변의 편측성·나이·질환 단계 등 6개 항목을 기준으로 동물모델을 분류하는 '시아랩'(SIALAP) 체계를 개발했다. 시아랩은 종(Species)·유도 방법(Induction method)·투여 경로(Administration route)·편측성(Lateralization)·나이(Age)·질환 단계(Phase)의 영문 앞글자를 조합한 명칭이다.
분석 결과 해마에 뇌전증 유도 물질인 카이네이트를 주입한 마우스 모델은 해마경화증을 동반한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재현했다.
해마경화증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조직이 굳어지는 질환이다. 난치성 뇌전증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해마에 전기 자극을 반복해 뇌전증을 유도한 흰쥐 모델은 해마경화증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반영했다.
서로 다른 동물모델이 각각 다른 유형의 뇌전증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분자 수준에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환자의 질환 유형에 따라 적합한 동물모델을 선택하면 치료제 후보물질의 효과를 더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 의대의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통해 배출된 신진 의사과학자들이 주도했다. 이 사업은 의대 졸업 후 임상 수련을 받은 의사들이 의과학 연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 임상강사는 "환자의 뇌전증 유형을 가장 잘 반영하는 동물모델을 객관적으로 고를 수 있는 기준이 없어 늘 아쉬움이 있었다"며 "이번 연구가 더 정확한 전임상 연구와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해 동물모델의 정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첫 사례"라며 "뇌전증뿐 아니라 다양한 난치성 질환의 신약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원주 교수는 "동물모델이 인간 질환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를 전사체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검증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라며 "이번 성과가 전 세계 뇌전증 전임상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최근호에 게재됐다.
ku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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