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삶까지 치료합니다"…'유방암 거목'이 이끄는 암병원의 미래 [K-메디컬리포트]
국내 유방암 치료 패러다임 바꾼 김이수 중앙대광명병원 암병원장
치료는 덜고 삶은 더하는 '명의'…환자 중심 암 치료의 미래 제시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차가운 병실, 독한 항암제와 수술을 앞두고 홀로 쓸쓸히 생일을 맞이한 환자 앞에 의료진이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든 채 나타난다. 어리둥절해하는 환자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이 전례 없는 이벤트를 주도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암병원의 최고 책임자, 김이수 중앙대학교광명병원 암병원장이다.
"그 조그만 이벤트에 환자들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려요. 그 모습을 보면 저도 울컥하죠. 의사는 단순히 암세포만 잘라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고 치유해야 진짜 의사죠."
김 병원장은 개인 통산 유방암·갑상선암 수술 1만 6000례를 비롯해 5만례 이상의 수술을 집도한 대한민국 외과학계의 거목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선행화학요법'(선항암요법)을 도입하고 액와부(겨드랑이) 림프절 절제를 최소화하는 '감시림프절 생검' 개념을 국내 진료 현장에 정착시키며 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권위자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환자들 사이에선 '따뜻한 의사'로 더 유명하다. 자신에게 치료받은 고령의 환자가 밭에서 직접 기른 열무로 담가온 단지 속 열무김치를 최고의 선물로 기억하는 의사. 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의사 가운을 입고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이자 지금도 매일 새벽에 기상해 주 12회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중앙대광명병원 암병원 역시 이 따뜻하고 역동적인 철학을 닮아있다. 진료와 검사 시스템을 철저히 환자 중심으로 맞춰 대기 시간을 줄이는 등 환자들의 불안을 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암세포가 아닌 환자의 삶을 치료한다는 그의 뚝심 있는 진료 철학과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외과의사라고 하면 대개 무뚝뚝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행보가 무척 인간적이고 이색적이다.
▶대단한 걸 베푼 게 아니다. 병원에서 생일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외롭고 두렵겠나. 간호사들과 다 함께 회진을 돌 때 축하해 주면 병실 분위기부터 달라진다. 환자들에게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가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건 의학 책에 나오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환자를 향한 정성이 통했는지 치료한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 98.2%에 달한다.
▶98.2%라는 수치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성적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삶이다. 유방암은 일부 환자의 경우 10년, 혹은 그 이후에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후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정기 검진과 생활습관을 끝까지 관리하는 장기 추적 관찰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라포)다. 약이 힘들다고 복용을 중단하거나 몰래 버리는 환자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래서 외래 때 잔소리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섞는 편이다. 환자가 치료와 처방에 잘 따라오게 만드는 '복약 순응도'를 높이는 것 역시 의사의 핵심 역할이다.
-유방암 치료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축소(De-escalation), 맞춤(Tailored), 정밀(Precision) 세 가지를 꼽았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나.
▶이 세 가지는 현재 유방암 치료가 나아가는 방향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환자의 암을 '정밀'(Precision)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맞춤'(Tailored) 치료를 선택한 뒤 불필요한 수술과 항암치료를 '축소'(De-escalation)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암을 잘 몰랐기 때문에 무조건 넓고 크게 수술해야 완치된다고 생각했다. 유방을 전절제하고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모두 절제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암에서는 살아남았을지언정 팔이 퉁퉁 부어 들지도 못하는 후유증(림프부종)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는 많이 떼어내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치료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환자의 부담과 고통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또 과거에는 모든 유방암 환자가 일률적인 항암치료를 받았다면 지금은 마치 몸에 딱 맞춘 정장처럼 환자의 암 아형과 유전자 특성에 따라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다유전자 분석 검사다. 예전에는 재발 위험이 낮은 환자도 혹시 하는 불안감에 독한 항암치료를 다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정밀 분석을 통해 재발 위험이 낮은 저위험군을 선별하고 힘든 항암화학요법을 과감히 생략한 채 호르몬 치료만 시행하기도 한다. 반대로 고위험군은 더 적극적으로 항암과 표적치료를 배치해 재발률을 떨어뜨린다. 정밀한 진단이 있기에 안전한 축소와 완벽한 맞춤 치료가 가능한 시대다.
-과거 국내 최초로 선항암요법과 감시림프절 생검을 도입했다. 당시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새로운 치료법을 처음 도입할 때마다 의료계의 우려와 반대는 항상 있었다. 하지만 선행항암요법을 하면 종양 크기를 줄여 유방을 보존할 수 있는 환자가 훨씬 많아진다. 감시림프절 생검 역시 암이 가장 먼저 전이되는 림프절만 확인해 불필요한 절제를 줄이는 혁신이다. 과거에는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가 조금이라도 확인되면 무조건 다 잘라냈지만 지금은 전이가 1~2개 정도라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근거가 확실히 정립됐다. 치료는 앞으로도 계속 축소될 것이다. 효과가 같은데도 환자에게 더 힘든 고통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의학은 결국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최근 젊은 유방암 환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치료 접근법도 달라야 할 것 같은데.
▶식생활의 서구화와 비만 등으로 인해 젊은 환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치료 이후 살아갈 삶이 훨씬 길다. 결혼, 임신, 출산을 계획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생활도 계속 영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암세포만 잘라내고 끝내서는 안 된다. 치료 과정에서 가임력 보존이 필수적이기에 산과·부인과와의 긴밀한 다학제 협진을 통해 항암 전 난자 동결을 진행하거나 난소 보호 주사를 처방하는 등 젊은 여성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또한 젊은 환자들은 진행이 빠른 삼중음성 유방암이나 유전성 유방암 비율이 비교적 높다. 유방암 유발성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난소암 위험도 함께 증가하므로 장기적인 예방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방암은 수술 한 번으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라 환자의 인생 전체를 함께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중앙대광명병원 암병원의 '원스톱'(One-Stop) 시스템도 환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다.
▶암 환자에게 가장 잔인한 고통은 바로 기다림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래서 암병원을 개원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이 이 대기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직검사부터 결과 확인, 수술 일정 확정까지 약 1주일 내 진행하고 외래 방문 후 3주 이내 수술이 가능한 신속 진료 시스템을 운영해 환자의 불안과 치료 대기 기간을 최소화하고 있다. 외과를 중심으로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이 완벽한 팀워크로 다학제 진료를 펼치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마지막으로 중앙대학교광명병원 암병원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 암병원은 개원 이후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지만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환자들이 가장 애태우며 기다리는 MRI 등 영상 검사 대기 시간을 더 줄이기 위해 장비와 공간 확충을 확정 지었다. 수도권 서남부를 대표하는 암 치료 거점 병원으로 확실히 우뚝 서겠다.
그럼에도 좋은 암병원은 수술 건수만 많은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가장 믿고 찾으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삶을 책임져주는 병원이다. 환자들이 치료를 마치고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고 안심하는 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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