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게 끝이 아니다…마약과의 싸움은 이제부터

[병원 문을 넘은 마약④] 단속 넘어 상담·치료·사회 재활까지
회복 중심 마약 정책으로 전환…"다시 일상으로" 국가 지원 확대

편집자주 ...마약은 병원 문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포대교 추락사고와 동물병원 유출 사건은 치료의 공간이어야 할 병의원이 어떻게 프로포폴의 온상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 묵직한 경고음을 울렸다. 이에 정부는 처방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남용 의심 기관을 상시 추적하는 하반기 고강도 대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6월 26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뉴스1은 일상 속 의료용 마약의 그늘을 걷어낼 전방위적 대응 로드맵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열린 수면마취제 불법 반출 간호사 적발 브리핑에서 불법 반출한 수면 마취제를 공개하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한 번만.

마약 유령은 그렇게 꼬마 마법사 '새로이'를 유혹했다. 새로이는 결국 평범한 일상을 잃었다. 하지만 친구 '청정이'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새로이는 다시 일어섰고 이제는 자신처럼 마약의 유혹에 흔들린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존재가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약 예방·사회재활 캐릭터 '새로이'의 이야기다. 동화 같은 설정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약과의 싸움은 적발과 처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중독자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회복과 사회복귀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마약 정책은 완성된다.

정부의 마약 정책도 '단속'에서 '회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처방 관리와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이미 중독에 빠진 사람을 치료와 재활로 연결하는 '회복 중심' 정책에도 힘을 싣고 있다. 중독자를 다시 가족의 품으로, 직장으로, 지역사회로 돌려보내야 재범을 막고 또 다른 중독도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꼬마 마법사 '새로이'가 마약류 오남용 예방활동에 노력하는 하늘다람쥐 '청정이'와 하늘을 날고 있다. (식약처 제공)
"용기 내 한 걸음"…상담에서 사회복귀까지

회복 시스템의 출발점은 지난해 문을 연 '1342 용기한걸음센터'다. '1342'에는 '당신의 일상(13)을 24시간(42)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마약류 사용으로 고민하는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까지 누구나 익명으로 상담받을 수 있다. 올해부터는 카카오톡 채팅 상담도 가능하다.

1342는 단순한 상담 창구가 아니다. 전문 상담사는 중독 정도와 정신건강 상태를 평가한 뒤 개인별 상황에 맞는 의료기관이나 재활기관으로 연계한다. 상담 한 통이 치료와 사회재활의 시작점이 되는 셈이다.

회복을 향한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9178건의 상담이 이뤄졌고 올해도 5월까지 3566건이 접수됐다.

식약처는 최근 전국 54개 교정시설에도 '1342 전화상담 핫라인'을 구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출소를 앞둔 마약류 사범이 교정시설 안에서부터 상담받고 출소 후에는 재활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며 "하반기부터는 복역 기간과 관계없이 상담받을 수 있도록 대상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담 이후에는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된 '함께한걸음센터'가 회복 과정을 이어받는다. 과거에는 일부 지역에서만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상담과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센터는 단순히 '마약을 하지 말라'고 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중독 수준을 평가하는 심리검사부터 개인·집단상담, 가족 프로그램, 자조모임, 사회기술훈련, 사례관리까지 회복 전 과정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정기 상담과 모니터링을 이어가며 단약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마약은 끊는 것보다 끊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회복 이후의 삶도 지원하고 있다. 식약처와 고용노동부는 이달부터 마약류 중독 회복자를 대상으로 취업지원 서비스를 연계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취업 상담과 직업훈련, 취업 알선까지 지원해 경제적 자립과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처벌보다 회복…재범 막는 국가 시스템

정부는 마약 정책의 또 다른 축으로 '사법-치료-재활 연계' 모델도 확대하고 있다. 초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마약사범을 무조건 처벌하는 대신 치료와 재활을 조건으로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제도다. 중독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사법-치료-재활 연계 참여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검찰이 대상자를 의뢰하면 식약처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중독 수준과 치료 필요성을 평가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 전문가위원회가 개인별 치료·재활 계획을 수립하고 보건복지부 지정 치료보호기관에서 치료를 진행한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과 약물검사를 병행하며 회복 과정을 관리한다. 여러 부처가 역할을 나눠 한 사람의 회복을 함께 지원하는 구조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 제도의 목적은 처벌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재범을 막는 데 있다"며 "참여자는 치료와 사회재활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해야 하고 회복 과정도 지속적으로 관리받는다"고 설명했다.

회복을 뒷받침할 전문인력 양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중독상담사 국가 인증 체계를 마련하고 상담·재활 종사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재활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예방교육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마약의 위험성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상황에서 유혹을 거절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체험형 교육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가상현실(VR)과 메타버스, 교육연극 등을 활용해 실제 마약 권유 상황을 간접 체험하고 '거절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청소년과 대학생, 군 장병, 직장인, 외국인 등 대상별 맞춤형 예방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또래 중심 캠페인과 다국어 콘텐츠를 통해 교육 대상을 넓히고, 생애주기와 생활환경에 맞는 예방교육으로 마약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마약 정책은 단속과 처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독자의 회복과 사회복귀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며 "재범을 막기 위해 회복 지원 체계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마약류 중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회복의 손길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재활 서비스를 지속해서 확대하겠다"며 "회복 의지를 가진 이들이 다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