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 명가' 고대안암병원의 집념…맞춤 치료로 심장 리듬 되찾는다 [K-메디컬리포트]

최초 시술의 역사 이어 차세대 펄스장절제술·AI 기반 정밀 의료 선도
최종일 교수 "부정맥 통제할 무기 다양해…환자별 정확한 분석이 핵심"

최종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부정맥 환자의 치료를 위해 펄스장 절제술을 시행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제공)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심장은 평생 전기 신호로 뛴다. 이 신호가 길을 벗어나 불규칙해지는 순간 맥박은 균형을 잃는다. 바로 부정맥이다. 부정맥은 단순히 맥이 이상하게 뛰는 증상이 아니다. 심방세동부터 유전성 질환까지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방치하면 뇌졸중이나 예고 없는 돌연사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환자에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고 의료진에게는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거대한 벽이다.

이 난공불락의 영역에 국내 의료계가 처음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한 것은 1998년 IMF 암흑기였다. 당시만 해도 완치가 불가능해 약물 처방이 전부였던 심방세동을 뿌리 뽑기 위해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국내 최초로 가느다란 관을 심장에 넣어 전기 신호를 끊어내는 '전극도자절제술'을 임상 현장에 전격 도입했다. 세계적인 부정맥 석학 김영훈 교수(전 고대의료원장)가 주도한 이 과감한 결단은 국내 부정맥 치료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바꾼 역사적 분수령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모든 대형병원이 시행하는 글로벌 표준 치료의 모태가 됐다.

선구자가 남긴 이 유산은 통산 시술 1만 건을 돌파하며 더욱 진화했다. 다학제 정밀 시스템을 구축한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는 최근 국내 도입된 차세대 '펄스장절제술' 장비를 종류별로 모두 도입해 환자 맞춤형 선택지를 넓히며 또 한 번 세계적 수준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 유서 깊은 명가에서 원격 모니터링과 AI 심전도 기술을 개척하고 국내 최초 유전성 심장질환 클리닉을 이끄는 최종일 순환기내과 교수를 만나 부정맥 정밀의료의 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종일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제공)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만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인가.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의 가장 큰 강점은 오랜 역사 속에서 쌓아온 치료 경험과 체계적인 진료 시스템이다. 부정맥은 단순히 맥이 빠르거나 느린 병이 아니라 심방세동부터 빈맥, 서맥, 유전성 질환, 돌연사 위험까지 환자마다 양상이 다 다르다. 우리 센터는 국내에서 심방세동 전극도자절제술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3차원 지도화 기반 시술, 펄스장절제술, 심박동기와 제세동기 치료, 재발성 부정맥 재시술까지 폭넓게 시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장비를 갖추었느냐만이 아니라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다.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는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과 시스템을 완벽히 갖춘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여 년간 부정맥 치료는 어떻게 발전해 왔다고 보시나.

▶매우 크게 발전했다. 과거에는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부정맥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찾고 그 부위를 직접 치료하는 시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3차원 심장 지도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심장 안의 구조와 부정맥이 발생하는 부위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전극도자절제술의 정확도와 안전성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펄스장절제술처럼 새로운 에너지를 활용하는 치료법도 등장했다. 서맥성 부정맥에서는 심박동기 치료가 발전했고 돌연심장마비 위험이 있는 환자에서는 제세동기 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부정맥 치료는 단순히 맥박을 조절하는 수준에서 환자의 심장 구조와 전기 신호, 유전적 위험, 생활환경까지 고려하는 정밀치료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펄스장절제술이 부정맥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펄스장절제술은 부정맥 치료에서 중요한 변화다. 치료방법에서의 또 하나의 선택지를 갖게 된 것이다. 기존 전극도자절제술은 주로 고주파 열에너지나 냉각 에너지를 이용해 부정맥을 일으키는 조직을 치료했다. 반면 펄스장절제술은 짧고 강한 전기장을 이용해 부정맥과 관련된 심장 조직을 치료한다. 가장 큰 차이는 에너지의 성격이다. 펄스장절제술은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조직 손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심방세동 치료에서 중요한 폐정맥 주변은 식도나 신경 등 주변 구조물과 가까워 정밀한 치료가 필요하다. 펄스장절제술은 이런 측면에서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라고 해서 모든 환자에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환자의 심방세동 형태, 심장 구조, 이전 치료 경험, 동반질환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해야 한다.

-안암병원은 국내에 도입된 펄스장절제술 장비를 종류별로 모두 도입했다. 환자 맞춤 치료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환자에게 맞는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부정맥 환자는 모두 같지 않다. 심방세동의 진행 정도, 심장 구조, 병변 위치, 재발 여부, 시술 난이도 등이 환자마다 다르다. 특정 장비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치료 전략도 그 장비의 특성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여러 장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더 적절한 치료 접근을 선택할 수 있다. 안암병원은 기존 3차원 지도화 기반 전극도자절제술 경험에 펄스장절제술 장비 운용 경험을 더해 환자별 맞춤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비의 숫자 자체가 아니라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고르고 안전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장비는 그 판단을 더 정밀하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국내 최초로 디지털 헬스 기반의 원격 심전도 모니터링 연구를 이끄셨다. AI 기술까지 더해진 미래의 부정맥 진료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시나.

▶앞으로 부정맥 진료는 병원 안에서만 이뤄지는 진료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 심장 리듬을 함께 확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부정맥은 병원에 왔을 때만 나타나는 병이 아니다. 증상이 있다가도 검사할 때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긴 시간 동안 심전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치형 심전도,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워치 같은 디지털헬스 기술은 이런 한계를 줄여줄 수 있다.

특히 AI 심전도는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진료 현장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AI는 많은 심전도 데이터를 학습해 사람이 놓치기 쉬운 미세한 패턴을 찾아내 심방세동 가능성이나 심장 기능 저하 위험 등을 예측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원격 심전도 모니터링과 결합하면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의료진의 판단을 도울 수 있다. 다만 AI가 의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AI는 위험 신호를 더 빨리 찾고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이며 최종 판단은 환자의 증상, 병력, 검사 결과를 종합해 의료진이 해야 한다.

-또 국내 최초로 '유전성 심장질환 클리닉'을 개설하셨다.

▶유전성 부정맥은 겉으로 보기에 심장 구조가 정상처럼 보여도 심장 전기 신호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대표적으로 긴QT증후군, 브루가다증후군 등이 있다. 이런 질환은 실신이나 돌연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기 평가가 중요하다. 특히 젊은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신이 있었거나 운동 중·수면 중 실신을 경험한 경우, 혹은 가족 중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거나 원인 불명의 급사 사례가 있다면 반드시 유전성 부정맥을 의심해야 한다.

실제로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 방침이 바뀌기도 한다. 특정 유전성 부정맥이 확인되면 피해야 할 약물이나 생활습관이 달라진다. 운동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위험을 높이는 질환에서는 생활 관리가 치료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돌연사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면 선제적으로 삽입형 제세동기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부정맥 치료에서 정밀의료는 단순히 병명을 붙이는 것을 넘어 환자와 가족의 장기적인 위험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료를 바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정맥을 앓고 있거나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부정맥은 정확히 진단하고 환자 상태에 맞게 치료하면 일상생활을 충분히 유지하며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약물, 전극도자절제술, 펄스장절제술, 심박동기 등 다양한 무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정보나 주관적 증상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부정맥이 어떤 종류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무조건 모든 환자에게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닌 만큼 환자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보고 가장 적절한 치료를 선택해야 한다.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는 축적된 경험과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