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데이터 싸움…'한국형' AI·바이오 생태계 만들 수 있을까 [노화역전의 꿈]⑯

노화 '측정'에서 예측으로…유전체·EHR 기반 예측모델 확산
의료계 "규제 대신 순환 구조 설계…인력·비지니스 모델 동시 고려"

편집자주 ...노화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제 과학은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실험이 이어지면서, '노화 역전'이라는 개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뉴스1은 이번 기획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노화역전을 집중 조명한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노화역전(anti-aging reversal) 기술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신약·표적 발굴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AI-바이오-의료 융합 생태계 구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명 연장과 기능 회복 가능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개입하려는 기술이 빠르게 상용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공공 데이터 인프라 확보가 각국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8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 한해 글로벌 바이오헬스 산업은 유전체 분석, 디지털 치료기기, 생체신호 기반 예측 기술을 중심으로 고령친화 체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일수록 노화를 질병이 아닌 ‘예측 가능한 건강 상태’로 다루려는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며, AI 기술과의 융합이 핵심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은 고령 인구의 생체정보와 건강기록을 종합 분석해 노화 곡선을 도출하고, 예측 가능한 건강위험 요인을 추출하는 정부 주도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미국은 고위험군 조기 예측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다기관 협력 체계를 마련했고,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지난해부터 노화 관련 질환 예측 모델을 지역사회 헬스케어 시스템과 연동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AI는 단순 진단을 넘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건강 변화를 추적해 '노화 시계(Aging Clock)'를 정량화하고 있다. 노화 시계는 유전체, 혈액검사, 생체신호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알고리즘이다. 최근에는 피부·혈관 나이 외에도 장내미생물이나 대사물질 기반의 예측모델까지 등장하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노화시계' 구축을 '국가 단위의 장기 연구개발(R&D) 전략’으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인 유전체를 기반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을 예측하는 '헬스베타' 모델을 개발해 임상 정확도 83%를 기록했고,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예방의료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TRisk' 모델도 대표적인 사례다. 40만 명의 심부전 환자 전자의무기록(EHR)을 기반으로 36개월 이내 사망 가능성을 예측했으며, 기존 전문가 기반 모델보다 정확도가 높다. 이후 미국 병원 데이터에 적용해도 예측력이 유지되며 범용성과 신뢰도를 입증했다. TRisk는 암 진단 이력이나 간 기능 저하와 같은 비전형적 요소도 예측 변수로 반영해 주목받았다.

'노화 시계' 작동하려면…"데이터 연동과 인프라 구축이 먼저"

전문가들은 노화역전 기술이 결국 '데이터 경쟁'이며, 이는 단순 기술의 문제가 아닌 '생태계 설계'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기관, 산업계, 정부가 공동 목표 아래 정밀 노화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이를 진료, 산업, 연구에 통합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생애 전주기 데이터를 안전하게 수집하고 분석 가능한 수준으로 연동하는 구조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생태계 전반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AI바이오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모델의 핵심은 △의료데이터 신뢰도 확보 △다기관 임상데이터 표준화 △AI 기반 예측모델 검증 체계 △창업·산업화 파이프라인 연계 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복수 기관 간 데이터 연계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하며, 노화·기능 저하·회복에 대한 임상 지표도 일관되지 않다는 분석이다.

병원 간 비표준 EMR(전자 의무기록) 체계, 분절된 연구데이터, 민·관 협력 부족 등으로 통합 인프라 구축은 걸음마 단계다. 인프라 한계는 민간 주도의 노화 예측 서비스 확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장내미생물 기반의 건강예측 앱 등은 늘고 있지만, 의료기록·보험청구·건강검진·행태 데이터 간 연동은 미흡하다. 시중에 출시된 '노화 진단 키트'나 '노화 분석 앱' 역시 대부분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이나 임상 수치와 연결되지 않아 검증 기반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노화 예측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인재 수요 가이드북'에 따르면 정밀 바이오데이터 처리 인력, 디지털 헬스 융합 전문가, 생물정보 통계 인력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현재 국내에는 이를 충당할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대학원 기반 커리큘럼이 실증 프로젝트나 임상 데이터 분석과 연계되지 않아 산업 현장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센터 센터장은 "AI 기반 진료기록 시스템이 병원 내에서 안정적으로 도입·확산되려면, 의료 AI 인프라 구축과 비즈니스 모델 검증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사전 검증과 인프라 투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성인 건강보험연구원장(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도 "AI 기반 의료 생태계가 자리 잡기 위해선 공공과 민간이 함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계하고, 활용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규제와 제한으로 통제하기보다는 성장과 발전의 선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