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뇌사' 넘어 '심장사'까지…"헌혈처럼 일상 속 생명나눔으로"(종합)

복지부, 기증문화 확산 5개년 계획 발표…기증절차 '원스톱' 서비스 추진
"기증자는 잊히지 않는다"…전국 병원에 '기억의 벽' 설치 추진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장기 기증 및 이식 주요 현황, 이식 종합계획 비전 및 목표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5.10.16/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장기와 인체조직 기증·이식을 아우르는 국가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계획은 뇌사자 중심의 현행 기증 체계에 '심장 정지 후 장기기증(DCD)' 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기증 희망 등록기관을 두 배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기증을 헌혈처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되, 금전적 거래나 매매로 왜곡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한다.

복지부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제1차 장기·조직 기증 및 이식 종합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지난해 개정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음 수립된 것으로, 연구용역과 공청회, 장기이식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현재 국내 장기이식은 대부분 뇌사자 기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이식 대기자는 매년 증가하는 반면, 뇌사자 기증은 최근 3년간 400명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차관은 "장기기증과 이식 전반을 아우르는 첫 국가 종합계획으로,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증희망 등록기관 462곳→904곳…주민센터·도로교통공단·건보공단 지사서도

복지부에 따르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지난해 말 기준 5만 4789명에 달한다. 신장이식의 평균 대기기간은 7년 9개월이며, 하루 평균 8.5명이 장기를 기다리다 숨지고 있다. 반면 뇌사자 기증자는 397명에 그쳐, 전체 대기자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복지부는 헌혈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증이 논의되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기증희망 등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등록기관을 현재 462곳에서 2030년까지 904곳으로 두 배 확대한다. 주민센터, 도로교통공단, 건강보험공단 지사 등 일상적 접점기관을 중심으로 창구를 넓힌다.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여권) 발급 과정에서도 기증 희망 의사를 표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은 12.3%로, 2018년(16.3%) 대비 감소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기관의 사전연명의향서 상담 창구를 활용해 장기기증 희망등록 절차를 '원스톱'으로 연계할 계획이다.

장기이식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 추진…지역균형 등 고려해 '거점병원' 지정

이번 종합계획의 핵심은 기존 뇌사자 중심 체계를 넘어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을 도입하는 것이다. DCD는 연명의료를 중단한 뒤 심장 기능이 멈춘 환자의 장기를 기증하는 방식으로, 스페인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전체 기증자의 절반가량이 이 제도를 통해 기증한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DCD 절차를 법제화하기 위해 '장기이식법'과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을 추진한다. 절차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후 장기구득기관 통보 △기증 상담 및 가족 동의 △기증자 신체검사 및 등록 △연명의료 중단 이행 △순환정지 사망 판정 △장기 적출 순으로 이어진다.

의료기관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EMR(전자 의무기록) 자동 통보 시스템을 구축한다. 뇌사 추정자가 발생하면 병원 전산망을 통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즉시 통보되며, 기증 상담과 장제 지원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 인력도 적시에 배치된다. 이에 대해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정통령은 "병원마다 EMR 체계가 다르지만, 핵심 정보는 표준화되어 있어 연동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보건의료정보원과 병원 간 협의로 기술적·법적 기반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기기증 거점병원 지정 계획도 구체화했다. 복지부는 장기기증과 이식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병원을 권역별로 지정해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정 기준과 관련해 정 정책관은 "이식 건수, 인력 규모, 지역 균형 등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장기이식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지역 간 균형 배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 권역 내에서 인력과 경험이 충분하고, 타 병원에 교육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우수 기관을 선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장기기증 종합계획 비전 및 목표
기증자·유가족에 지원 강화…복지부 "기준 등록률과 실제 동의율 높일 것"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도 한층 강화된다. 정부는 기존 장례비·화장비 지원 외에 주요 병원과 지방자치단체 로비에 '기억의 벽(기증자 현판)'을 설치하고, 가정용 감사패 수여 및 추모행사를 확대한다.

복지부는 생명나눔 문화 확산을 위한 홍보 전략도 병행한다. 생명나눔 교육과 캠페인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학교·공공기관·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생명나눔 교육 콘텐츠를 확산할 계획이다. 생명나눔 문화 정착의 핵심지표에 대해 정통령 정책관은 "하나의 지표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증 의사를 밝히고 동의하는 비율이 가장 중요한 성과지표가 될 것"이라며 "기증 등록률과 실제 동의율 모두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제도적 지원과 함께 사회적 인식 개선에도 속도를 낸다. 장기기증과 인체조직 기증을 '헌혈 이후 제2의 생명나눔 운동'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문화·교육·홍보 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헌혈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증이 논의되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는 취지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차관은 "생명나눔이 헌혈처럼 확산하길 바라지만, 금전적 거래나 매혈처럼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엄격한 윤리적 기준 위에서 기증 문화가 자리 잡고, 생명을 존중하고 나누는 사회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