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교수직 거절당해…난 그래도 운좋은 여성의학자"
-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메디컬리더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국내 여성의학자 최초로 '함춘동아의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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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출산같은 개인 문제로 연구의 길을 포기하는 젊은 여성과학자들이 많아요. 이런 고민을 개인 문제로 보지 않는 연대의식이 필요합니다. 의학과 생명공학 분야는 여성들이 정말 잘하는 분야거든요."
국내 여성의학자 중 최초로 '함춘동아의학상'을 받은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56)는 22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수상의 기쁨보다 후배들 걱정부터 털어놨다. 어려운 여건 때문에 연구자의 삶을 고민하는 여성의학자들이 많아서다. 그는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반드시 길이 열린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김 교수는 "나를 시작으로 이 상을 받는 여성의학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상금 3000만원은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모두 되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 교수는 상금 3000만원 중 1000만원을 의대생들 장학금으로 쓰이도록 서울의대 동창회에 기부했다. 또 1000만원은 재직중인 분당서울대병원 후원금으로 쾌척했다. 대한의사협회 회관 신축자금과 한국여자의사회 발전후원금으로는 각각 500만원을 냈다.
'함춘동의학상'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가 의학발전에 공로가 큰 동문 교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했다. 그동안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굵직한 연구성과를 낸 명망있는 의대교수들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여자란 이유로 교수직 거절당해"
김 교수는 지난 20여년간 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헬리코박터균)'를 연구해왔다. 이와 관련해 14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분야에서 국내 독보적인 존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차별을 당했다.
김 교수는 "의대생 시절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소화기내과는 남자들의 무대였다"며 여자 의대생이 남자들과 같은 코스를 밟아 교수가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역 국립대병원에 문을 두드렸다. 그 병원에서는 1년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김 교수는 그 말만 믿고 교수로 일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1년후 그 병원에선 "내과에 이미 여성교수가 1명 있는데, 왜 또 여성을 뽑아야 하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김 교수는 "내가 여성인 것은 고칠 수 없는 문제여서 큰 상처가 됐다"면서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되기까지 꼬박 10여년이 걸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악물고 버틴끝에 교수 꿈 이뤄"
그는 199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인 남편을 따라 떠난 미국에서 로드아일랜드병원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식도염 분야를 연구했고 유명 학술지에 논문까지 발표했다. 이 연구는 국내에서도 이어졌다. 성과를 인정받은 김 교수는 1999년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병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두번째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두 딸을 키우면서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리는 삶이 고단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김 교수는 "연구성과가 더디니까 연구실에서 나가달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못나간다고 버텼다"면서 "결국 제가 제안한 연구에서 성과가 나오면서 3년반을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교수의 꿈을 이뤘다.
역경이 적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여성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지만 오히려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창의력과 열정만 있다면 후배들이 도전정신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서도 앞으로 유능한 여성의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여성의학자들이 고된 환경을 혼자 헤쳐나가다 연구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연대의식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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