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일랜드 통일 지지' 폭탄발언…수십년 美 중립외교 '흔들'

트럼프 “아일랜드 통일 보고 싶다”…美·아일랜드에 파장
美, 북아일랜드 지위에 중립 입장…트럼프 발언에 외교 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팜리 하우스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2026.09.1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수십 년간 유지해온 미국의 중립적 외교 기조를 뒤흔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에서 "아일랜드가 통일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아일랜드 통일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나는 통일되는 것을 보고 싶다"며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지금 그렇게 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마틴 총리가 이를 추진하기에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그동안 아일랜드 통일이라는 영국과 아일랜드 간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어느 한쪽의 입장도 지지하지 않는 중립 기조를 유지해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북아일랜드에서 약 30년에 걸친 유혈 분쟁인 '트러블스'를 사실상 종식시킨 성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 체결을 중재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성금요일 협정에 따라 북아일랜드는 주민투표에서 통일에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가 될 경우 아일랜드 공화국에 편입될 수 있다. 다만 북아일랜드를 영국의 일부로 유지할지 여부는 영국 정부에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영국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앤디 번햄 영국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성금요일 협정에 따른 주민투표를 실시할 만큼 여론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것이 바뀌기 전까지는 주민투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026.09.12 ⓒ 로이터=뉴스1

브렉시트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문제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서 아일랜드는 EU에 남게 됐고, 브렉시트 협정이 성금요일 협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북아일랜드에 별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 영국 하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반대했다. 그는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주민투표도 통일도 원하지 않는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정부 역시 통일 여부는 미국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헬렌 맥엔티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이처럼 중대한 일은 아일랜드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우리가 이를 위해 노력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지지는 최근 몇 년간 북아일랜드에서도 크게 높아졌지만, 여전히 영국에 잔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명확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통일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의 메리 루 맥도널드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발언은 시의적절하다"며 "총리는 이제 통일 아일랜드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발언을 통해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적 중립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동맹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 문제에 잇따라 개입해온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이슬란드와 캐나다, 그린란드 등의 영토 문제에도 개입해왔다. WP는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의 외교적 규범과 제도적 장치를 흔드는 그의 성향을 다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