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난관' 中 못 겨눈 이란 고립작전…"실효성 없는 경고사격"
5대 분야 거래국 금융제재 예고했지만…구체적 대상국·시기 미언급
외신 "中 은행 등 제재 없인 공수표"…내달 시진핑 회담 앞두고 딜레마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경제 제재에 나섰다. 군사작전과 이란 항구 봉쇄에 이어 경제적 고립을 통해 이란 정권의 자금줄을 끊어 경제적으로 질식시킨다는 구상이다.
다만 주요 외신들은 이번 조치가 당장 이란 경제를 무너뜨릴 만큼 구체적이고 강력한 제재라기보다는 추가 제재를 예고하며 각국에 이란과의 거래 중단을 압박하는 '경고 사격'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재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이란 경제 압박 작전을 '경제적 고립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으로 명명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에 미국의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디지털자산(암호화폐)·무기 기술·금·항공·해운 등 5개 분야에서 '2차 제재' 적용을 확대해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에 대한 금융 제재를 예고했다.
또한 이란의 핵·미사일 기술 조달과 석유 밀수, 사이버 활동 등에 관여한 해외의 이란 연계 의심 개인·기업·선박 60여 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이란으로 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일부 면허도 중단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의 국영 최대 은행인 멜리은행의 해외 지점 폐쇄를 다른 국가들에 요구하고, 이번 주 안에 추가로 한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각국 정상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란과의 구체적인 거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베선트 장관은 설명했다.
다만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고, 이들 국가의 금융기관에 제재를 가할 구체적 시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각국에 이란과의 거래를 끊을 시간을 주겠다며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모든 국가에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있다"며 "세계 금융시스템을 폭발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무한한 인내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가장 포괄적인 대이란 경제 공격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이란 경제를 얼마나 추가로 타격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베선트 장관이 당초 '경제적 디 데이(D-Day)'라고 표현했던 것과 달리 기자회견 이후 이번 조치를 "경고 사격(warning shot)"에 가깝다고 인정하고 각국과의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에 들어가겠다고 한 점에 주목했다.
NYT는 미국이 달러와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지위를 활용하면 제재의 파급력이 크지만, 이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각국이 달러 사용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고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이 최대 난관이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약 90%를 구매하는 최대 고객이지만, 미국은 다음 달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NYT는 결국 중국을 얼마나 압박할 수 있느냐가 이번 작전의 실효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봤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선임연구원인 대니얼 탠너바움은 "이란과 계속 거래하는 더 중요한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실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저 말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으로는 트럼프와 시진핑 사이에서 중국을 이란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조용한 외교가 진행되고 있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큰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란 핵협상에 관여했던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프로젝트 국장의 평가를 인용해 "발표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라며, 중요한 것은 위협이 아니라 미국이 실제로 제재를 집행하느냐라고 지적했다.
양당 집권기 모두 재무부 관리를 지낸 매트 스와인하트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이번 제재가 진정한 효과를 가지려면 이란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 소규모 민간 정유회사들인 일명 '티폿'(teapots·찻주전자)과 이란 원유 수입을 지원하는 중국 대형 은행들을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휴전을 깨트릴 이러한 행동을 할 의향에 의구심을 표하면서 이번 발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상대할 수단이 거의 고갈됐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백악관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번 조치가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지 묻자 "의심스럽다"고 답했다. 다른 관계자는 실제 집행된다면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면 이란에 경제적 탈출구가 남는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이번 조치가 이란 경제를 고립시키려는 대규모 작전이라는 점에는 주목했지만, 중국을 실제로 제재할 수 있느냐가 미국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WSJ은 미국이 트럼프 1기부터 이란의 원유 수출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를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를 차단하려면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해야 하지만, 이는 미·중 관계 악화와 중국의 보복 제재를 불러올 수 있다. WSJ은 미국이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란은 수십 년간 제재를 견디면서 페이퍼컴퍼니와 중개업체, 환전소, 이른바 '그림자 선단' 등을 활용해 제재를 우회하는 정교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에, 새로운 제재만으로 이란의 자금줄을 끊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중국이 최대 변수라고 봤다. 이날 베선트 장관은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미국 제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만 밝혔다. 가디언은 미국이 실제로 중국까지 겨냥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의 앤드루 밀러 선임연구원은 가디언에 이번 제재 발표가 "이 전쟁으로 미국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거나 정권 약화에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제재가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미국에 유리한 빠른 타결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중동 지정경제학 책임자인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CNN에 "이란은 폭풍을 견뎌낼 의지가 있고, 고통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있는 어떤 조치도 이란을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란에 필요한 것은 "지금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은 외교와 당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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