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부채는 1초에 1억2400만원씩 늘었다[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의 국가 부채가 지난 19일 사상 처음으로 40조 달러(약 5경 5256조 원)를 넘어섰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지만 빚의 증가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미국 의회합동경제위원회(JEC)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 1년 동안 1초당 약 9만 257달러 늘었다. 1초 깜빡하는 사이에 우리 돈으로 약 1억 2436만 원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40조 달러는 쉽게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하루에 10억 달러(약 1조 3780억 원)씩 갚아도 전액 상환하는 데 약 110년, 하루 100만 달러씩이라면 11만 년이 걸린다. 미국 인구 약 3억 430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11만 7000달러(약 1억 6160만 원)의 부채다. 한국의 1인당 국가채무의 6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 경제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32조 달러를 웃돌았지만 국가부채는 이를 넘어섰다. 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120%를 훌쩍 넘는다. 중국·독일·일본·영국·인도 등 미국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큰 5개국의 GDP를 모두 합쳐도 약 37조 달러로 미국 국가부채보다 적다.
더 큰 문제는 부채를 감당하는 비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이자 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해 전체 세수의 약 20%를 차지한다. 국방비보다도 많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 가운데 거의 절반이 순이자 비용에 해당한다. 빚이 늘면서 이자가 늘고,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부채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부채 급증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 모두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고 사회보장·메디케어 등 복지지출도 늘었다. 반면 감세로 세입 기반은 약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는 2016년 대선 당시 무역협상과 경제성장을 통해 8년 안에 국가부채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자신을 "차입의 제왕(king of debt)"이라고 칭하며 부채를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당시 20조 달러에 못 미쳤던 부채가 10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는 연방정부 지출을 1조 달러 줄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 절감액은 20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마저도 미 회계감사원(GAO)은 추산의 신뢰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관세 역시 재정적자를 줄이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연방대법원이 일부 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하면서 정부는 기업들에 1600억 달러가 넘는 관세를 환급해야 한다.
감세와 이란 전쟁도 부담이다. 지난해 감세 조치로 올해 약 1000억 달러의 세수 감소가 예상되고, 이란 전쟁에 따른 군사비 증가와 에너지 가격 상승은 재정과 경제성장에 동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재정 불안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데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3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금리)은 최근 5.33%까지 올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장기 국채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등 장기 대출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에도 상승 압력이 생긴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최근 국채시장 안정에 나선 것도 이런 불안을 보여준다. 미 재무부는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지원책 역시 미국 정부가 국채시장 불안을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그동안 미국이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있었던 데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큰 역할을 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외환보유액으로 달러를 보유하고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일부 연구는 기축통화 지위 덕분에 미국 정부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약 22% 더 많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른바 '달러 특권'이다.
하지만 이 안전판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이 미국의 재정정책과 정치적 불확실성을 우려하면서 국채에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지난해 5월 재정적자 확대와 정치권의 대응 실패를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로 1단계 낮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에 이어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이다.
당장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안화나 유로화에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 미국 금융시장의 규모와 유동성, 경제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단기간에 대체할 경쟁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국이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 낮추는 것만으로도 미국이 누려온 싼값에 빚을 내는 특권은 약화할 수 있다.
미국이 당장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미국의 상황을 '적색 경보'가 아닌 '황색 경보'에 비유한다. 문제는 황색 경보가 언제 적색으로 바뀔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40조 달러가 보여주는 것은 세계 경제의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재정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신호다. 지금까지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국채에 대한 세계적 수요 덕분에 빚을 늘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미국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부채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 국채는 세계 금융시장의 사실상 기준 수익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다른 나라의 국채 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도 함께 상승한다. 미국 국가부채가 40조 달러에 이른 것은 세계 금융시장이 미국에 '이 정도의 부채를 계속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는 경고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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