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인도·태평양서 빠질 수 있다"…亞동맹들 '안보 자립' 모색

인도·태평양 항모 철수·대만해협 미군 관여 감소…中견제 약화
아시아 자체 군비·핵무장 우려…"中·러엔 영향력 확대 기회"

미국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CVN-73)이 5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길이 333m, 폭 78m, 무게 10만여 톤, 승조원 6000여 명에 달하는 니미츠급 항모인 조지워싱턴함은 항공기 80여 대를 탑재할 수 있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2025.11.5 ⓒ 뉴스1 윤일지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도·태평양에서 발을 빼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아시아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의존도를 재검토하고 자체 방위력 강화와 대체 안보협력 구축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슈아 컬랜직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19일(현지시간) CFR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아시아 관여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최근 실제 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날 아시아 외교관들과 지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정책 변화가 역내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과 대체 안보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컬랜직 연구원은 대표적인 사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직전 국방부에 규모 축소를 지시하면서 훈련 비용과 북한의 최근 행동, 한국의 대이란 협조 거부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훈련 축소 결정이 북한 문제가 아닌 이란 전쟁과 관련한 한국의 협조 여부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이 아시아 동맹국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이언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방부 유럽·나토 정책 담당 부차관보는 "이번 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체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모두가 자신들의 미국과의 관계도 한국처럼 불안정한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불과 지난해 12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한국을 "모범 동맹"이라고 평가했던 것과도 대조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대만에 대한 140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중국과의 협상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연기하기도 했다.

미국의 아시아 군사력 공백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 최근 인도·태평양에 배치됐던 유일한 미국 항공모함을 중동으로 이동시켰다. 이에 따라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태평양에 미국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는 상황이 됐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도 미국의 군사적 관여가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컬랜직은 헤리티지재단 분석을 인용해 트럼프 2기 들어 미군의 대만해협 통과 횟수가 1기보다 약 50%,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56% 감소했다고 전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항행의 자유' 작전 역시 트럼프 2기 첫 6개월 동안 한 차례도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컬랜직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정책에서도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도 크게 줄였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동 전쟁과 서반구에서의 군사작전 및 봉쇄에 집중하면서 아시아에서 병력과 군사자산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자원 재배치인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인지 여부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가 이어지면서 아시아 동맹국들의 미국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한 아시아 외교관은 폴리티코에 "자립에 대한 재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장기적으로 미국의 안보우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방위 능력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시아 외교관은 "최근 신호는 협력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미국의 철수에 더 가까워 보인다"며 "핵심 문제는 미국의 의도가 아니라 미국이 약속한 수준의 역내 주둔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은 방공·미사일방어체계와 군사시설 방호 능력을 강화하고 호주 및 유럽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은 지난 6월 공동 군사훈련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고, 인도와 베트남은 5월 무기 공동생산에 착수하는 등 미국 이외의 안보협력망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컬랜직은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 쪽으로 기울거나 자체 군비 증강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경우 자체 핵무기 개발을 통한 억지력 확보에 나설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미국 호감도가 지난 1년간 두 자릿수 하락했으며, 한국과 필리핀에서는 미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조사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움직임이 중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니컬러스 번스 전 주중 미국대사는 "중국 지도부는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놓을 기회를 모색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지도부를 비판한 시점은 왕이 외교부장이 워싱턴과 서울 사이의 틈을 더욱 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컬랜직은 "아시아의 진짜 문제는 무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워싱턴의 안보 우선순위와 규칙 준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라며 미국의 정책 변화가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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