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돌봄 비용에 증발하는 美베이비부머 자산…"물려줄 돈 없다"
WP, 정부 장기 연구의 생애 마지막 10년 가계 영향 분석
하위 41%가 재산 못 남겨…메디케이드 이용 후엔 집 뺏기기도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베이비붐 세대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노령화 과정에서 치솟는 돌봄 비용 때문에 남길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십 년간 이어진 주택 가격 상승과 주식 시장 호황, 경제 성장 덕분에 부를 축적했지만, 은퇴 이후 장기 요양 비용이 재산을 빠르게 소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연방정부가 1992년부터 진행해 온 ‘건강·은퇴 연구(Health and Retirement Study)’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수만 명의 미국인을 50대 초반부터 사망할 때까지 2년마다 재정 상황을 기록해 온 장기 추적 조사다.
WP는 이 가운데 2006년부터 2022년 사이 사망한 수천 명의 사례를 집중 검토해,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본인 부담으로 지출한 돌봄 비용이 가계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많은 가정에서 노인 돌봄 비용이 상속하려던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저축액이 줄어드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자녀들은 세대 간 부를 물려받기는커녕, 오히려 부모님의 간병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저축까지 써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6년부터 2022년 사이 사망자 수천 명이 마지막 10년 동안 지출한 의료·돌봄 비용은 중윗값 기준 1만9179달러(2813만1957원)였다. 6명 중 1명은 5만 달러 이상, 20명 중 1명은 10만 달러 이상을 썼다.
특히 저소득층의 부담이 컸다. 하위 20% 계층에서는 41%가 사망 전 돌봄 비용을 지출한 뒤 남은 재산이 전혀 없었고, 이들이 마지막 10년 동안 쓴 비용은 전체 자산의 3분의 1에 달했다. 반면 상위 20%는 같은 기간 자산의 1.5%만을 돌봄 비용으로 지출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비용은 주거비용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크다”고 지적했다.
집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경우 비용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2025년 기준 개인실과 기본 서비스의 연간 중위 비용은 약 7만4400달러(약 1억912만원)였으며, 요양원 개인실은 12만9575달러에 달했다. 치매 환자가 7년간 요양원에 머무를 경우 비용은 거의 100만 달러에 이른다.
경제정책 연구자 제시카 포든은 “많은 미국인이 장기 요양 비용 때문에 자산을 소진해 후세에 물려줄 것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포든은 “대규모 상속이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라며 “상속을 남길 수 있는 건 최상위층뿐이고, 대부분은 은퇴와 돌봄 비용으로 자산을 소진해 결국 메디케이드 자격을 얻기 위해 재산을 써버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비용이 급증하는 배경으로 가족 구조 변화와 수명 연장을 꼽는다. 과거보다 자녀 수가 줄고 가족이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돌봄을 외부에 맡길 수밖에 없고, 의료 발전으로 만성질환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돌봄 기간이 길어졌다. 여기에 요양시설 비용은 최근 5년간 44%나 올라 인플레이션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규모가 크다는 점도 수요와 인건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많은 가정이 저축이 바닥나면 저소득층, 보통 은행 잔고가 2000달러 이하인 사람들을 위한 요양원 비용 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1993년부터 연방법은 주 정부가 고인의 장기 요양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을 사후에 자산, 특히 주택을 압류하여 회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를렌 클라인은 지난해 97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공동 소유했던 집 때문에 오빠가 자산 회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아이다호주 메디케이드 자산 회수 프로그램을 관리했던 경험이 있어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그는 “장기 요양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서 많은 미국인이 어쩔 수 없이 메디케이드에 의존하다 결국 집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유한 나라에서 노인과 가족이 이런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수십년간 은퇴 후를 위해 노력했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콘래드 마일스는 은퇴 후를 위해 약 20만 달러를 저축했고, 산타페이 철도에서 연금도 받았다. 하지만 요양 시설로 옮긴 후 그의 저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고 딸 매리언 마일스는 말했다. 그가 93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돈은 약 3만 달러에 불과했다. 살았다면 몇 달 못 버틸 생활비였다고 WP는 전했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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