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반도체, 옛날같은 사이클로 안움직인다…공급 늘려야"

"수요 증가 속도가 공급 확대 훨씬 능가"
"조건 맞으면 미국이든 어디든 팹 건설"

최태원 SK그룹 회장(SK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02.22.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현지시간) 반도체 산업이 과거의 공급 부족과 과잉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던 사이클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구조적인 변화를 맞았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날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오프닝벨 행사를 마친 뒤 한국 언론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AI 시대 반도체 산업의 변화에 대해 "구조적인 변화는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며 "옛날과 똑같은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사이클이라는 것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며 "공급이 많아지면 다운턴, 수요가 많아지면 업턴이라고 분석해 왔는데 지금은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무척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는 이 차이가 언제 좁혀지느냐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수요가 자라는 속도가 우리가 공급을 늘리는 속도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팹을 짓는 데는 상당한 리드타임이 존재하고 제약 조건과 병목이 많다"며 "아무 데나 공장을 마구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AI 발전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구조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AI 세상이 오면서 메모리 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며 "이제 일반인도 AI를 사용하면서 토큰 사용량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토큰 사용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AI 내부에 저장해야 하는 키밸류 캐싱(KV Caching)이 늘어난다는 뜻"이라며 "그 캐시를 모두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저장해야 하고, 그 저장 수단이 결국 메모리 칩"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아직 여러분이 보는 AI는 4살이나 5살짜리 어린아이"라며 "이 아이가 성년이 된다는 것은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로 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AGI에 도달할 때까지 엄청난 양의 AI가 계속 학습해야 하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기억하고 저장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는 것과 똑같이 메모리는 계속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또 "메모리 가격과 사람들이 원하는 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완벽한 AI를 만날 때까지 학습과 애플리케이션 개발, KV 캐싱 증가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회장은 향후 압축과 저장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전체 메모리 수요 증가세를 막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앞으로도 기술 혁명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며 "HBM을 덜 쓰거나 D램을 덜 쓰는 기술, 데이터를 저장하고 압축하는 여러 기술이 발전하겠지만 그런 기술이 오더라도 저장해야 할 메모리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AI 관련 메모리 공급이 부족한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AI 이외의 전통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어떻게든 공급을 늘려야 하는 모멘텀이 필요하다"며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칩 생산을 늘릴 것이냐, 어떻게 하면 칩을 더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어 "공급 확대를 빨리 하지 않으면 반도체 시장이 죽을 수 있다"며 "반도체 시장은 AI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AI 기업들은 자본 투입이 계속되기 때문에 높은 칩 가격을 감당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나 자동차 같은 전통 산업에서는 칩 가격이 너무 비싸지면 제품을 만들 수도 없고 칩을 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칩을 구하지 못하면 시장이 쪼그라드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그것은 저희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며 "어떻게든 빨리 칩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생산기지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 회장은 미국 내 신규 팹 건설 가능성과 관련해 "조건에 맞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이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디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팹 건설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전력과 용수, 대규모 부지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팹을 지으려면 전력과 깨끗한 용수가 대량으로 필요하고 땅도 있어야 한다"며 "요즘은 예전처럼 팹 한 개를 따로 짓는 규모가 아니라 상당한 대규모 단지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전력과 용수의 규모도 매우 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팹을 여러 곳에 나눠 짓는 것은 관리도 어렵기 때문에 신규 투자를 한다면 상당히 대규모로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미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고 미국 고객들이 현지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가장 큰 시장이 미국에 있고 저희가 벌어들이는 상당한 매출이 미국 고객에게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많은 고객이 미국에도 팹을 지어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은 공급망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원한다"며 "조건이 맞는 곳을 찾아 필요하다면 충분히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투자 가능성이 한국 내 투자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한국에는 최대한 많은 투자를 한다는 사실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한국 투자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공장을 덜 짓고 미국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자꾸 생각하는데 이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더 많은 공급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투자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저희에게 직접 투자 요청을 한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정부가 제조업 리쇼어링을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당연히 저희도 해당될 수 있다"며 "그 요청이 공식적이었는지, 직접 왔는지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압박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모든 정치적 사안을 선거나 임기에 맞춰 무엇을 한다는 것은 저희가 그렇게까지 고려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다만 "미국 고객들이 공급 안정성을 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저희는 정치 일정보다는 고객과 시장의 특성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팹 건설 가능성을 거듭 열어두면서도 "그렇다고 꼭 짓겠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높은 수익성이 계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말이 안 되는 가격이 계속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시장을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언젠가는 폭락하는 상황이 오고 시장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추격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이미 실질적인 위협을 느낄 때라면 늦은 상황"이라며 "저희가 속도를 더 높이고 AI 기술과 포트폴리오를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인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도 꽤 빠른 속도로 쫓아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중국 기업들도 AI 시장의 성장으로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를 내고 기업공개를 통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선제 투자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 업체들도 좋은 환경에 들어갔고 추격 속도는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당연한 상황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회장은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액면분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검토 가능성을 열어뒀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액면분할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요청이 더 오면 당연히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아직 최고재무책임자(CFO)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지 못했고 해당 의제가 저에게 올라오지도 않았다"며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답할 만한 지식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10일 미국 뉴욕 나스닥 타워에서 주식예탁증서(ADR) 나스닥 시장 상장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유튜브 캡쳐) 2026.7.10 ⓒ 뉴스1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