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산주의냐 나치즘이냐" 선택할 수 있습니까

(서울=뉴스1) 진성훈 국제부 부국장 = 미국의 제45대 및 제47대 대통령인 도널드 J. 트럼프의 장점이라면 좋고 싫음이 비교적 분명하다는 점이다. 돌려 말하거나 은근히 압박하는 건 트럼프답지 않다.
자신의 이름을 무척 사랑해 건물이나 지폐 등 곳곳에 새겨넣고, 암호화폐·온라인총기거래 사업을 하는 아들들을 아껴 행정부 정책으로 적극 지원하며, 심지어 사돈들과 며느리, 사위에게도 주요 공직을 줬다.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이 모든 행위는 금세 무자비한 미국 우선주의와 마가(MAGA·미국을 더욱 위대하게) 제일주의로 확장되고,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는 관세는 폭탄으로 쓴다.
트럼프가 싫어하는 건 민주당(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좌파, 다양성 정책, 불법이민자 등이 첫손에 꼽힌다. 이를 아우르는 표현을 꼽는다면 대체로 '공산주의'가 된다. 열거한 어떤 부류를 비난할 때도 공산주의 딱지를 붙이는 게 트럼프가 즐기는 방식이다.
트럼프는 제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내셔널몰 야외행사에서 연설을 할 때도 공산주의 비판에 공을 들였다. 그는 "미국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공산주의는 패배자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공산주의는 미국 체제와 정반대"라고 말했다.
나치즘을 상대로 한 2차 대전에서 미국이 거둔 승리를 여러 번 되새기면서 "우리는 파시즘을 물리친 후,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라는 악에 맞서 싸웠다"고 했다. 한국전쟁 당시 처절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운 미군 참전용사를 직접 호명한 것은, 한반도의 공산화 확산 저지 수혜자인 한국인으로서는 뜻깊은 대목이긴 했다.
같은 날 워싱턴DC를 휘저은 건 트럼프 연설과 85만발의 초대형 불꽃놀이만이 아니었다. 이날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 수백명이 수도 워싱턴DC 도심을 떼 지어 활보하고 지하철을 전세 낸 듯 점령해, '인종 용광로'를 바탕으로 초강대국에 오른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패트리엇 프런트'(Patriot Front), 우리말로 '애국 전선' 정도인 이 단체는, 네오나치 조직 뱅가드 아메리카를 뿌리로 하는 네오파시스트 조직이다. 흰색 복면과 남색 상의, 베이지색 바지, 모자 등으로 옷차림을 맞추고 군대가 행진하듯 이동하면서,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연합 상징인 13개의 별이 달린 남부연합기를 들고 "미국을 되찾자"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탄생 계기가 된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나이트 더 라이트(Unite the Right)' 집회 당시 백인우월주의자가 차량으로 맞불 시위대를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친 일이 었었다. 당시에도 대통령이던 트럼프는 "양측 모두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애매하게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9년이 흐른 이날 애국 전선의 수도 행진에 더그 버검 내무장관은 "그들의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미국 민주주의를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표현의 자유"라고 용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시대의 출현과 백인우월주의 득세를 단 하나의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트럼프 집권으로 그들이 활동할 토양이 비옥해졌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현재 트럼프 내각의 유일한 흑인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한 명이다. 비(非)백인으로 범위를 넓혀도 히스패닉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까지 2명에 그친다.
오바마 부부를 원숭이(대표적인 흑인 인종차별 표현이다)로 합성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린 행태나, 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가 자주 네오나치 찬양 논란에 휩싸인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틈만 나면 응원하는 독일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은 트럼프가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모두 물리쳤다고 자랑한 바로 이날 독일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과거 나치당이 전당대회를 열어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유명한 '하일 히틀러' 경례를 공식화한 그날로부터 꼭 100주년이 되는 날에 맞춘 공개적 도발이었다.
이쯤 되면 "공산주의냐 나치즘이냐"는 끔찍한 밸런스 게임에서 트럼프가 무슨 답을 할지 궁금해진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재미없다'고 상대도 안할 일이지만, 트럼프는 좋고 싫은 게 분명한 사람이니 대답이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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