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통행료 대신 '자발적 기금' 부상…말라카 해협 사례

오만, 선박 안전항행 비용 구상 제안…IMO도 "강제 통행료 아닌 기금은 가능"
이란 주장 일부 반영한 절충안…美 반대 및 걸프국 입장 변수에 실현 미지수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2026.06.30.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신경전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강제 통행료 부과 대신 '자발적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절충안으로 거론되고 있어 주목된다.

해협 통행료 부과는 국제법상 불가능하지만, 항행 안전과 환경 보호 등을 위한 비용을 각국 정부·업계 등이 분담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단 논리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오만 당국은 최근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으로부터 서비스 수수료(service fees)를 받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오만 측은 해당 제안서에서 강제 통행료 부과가 아닌 자발적 비용 납부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를 담당해 온 호르무즈 해협은 오만과 이란 사이에 있다.

외교 당국자에 따르면 오만이 이번 제안에서 참고한 사례는 말라카·싱가포르 해협이다. 이 해협에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연안국과 이용국, 해운업계가 참여하는 협력체계가 2007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 체계 아래 설치된 항행안전기금은 등대·부표 등 항행 보조시설 유지·보수와 환경보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각국과 민간 이해관계자로부터 기여금을 받는다.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자료사진> 2025.01.14. ⓒ AFP=뉴스1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지난 28일 보도된 아랍어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해협을 단순히 통과한다는 이유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지돼 있다"면서도 "안전한 항행, 오염 방지, 비상 대응 등 해협 관리엔 비용이 드는 만큼 관련국이 자발적으로 분담하는 방안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적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모든 선박의 무해통항권(통과 통행권)을 보장하며, 연안국이 단순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만 당국도 이 같은 국제법상 원칙에 따라 그간 해협 통행료 부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이번 제안에선 통행료 부과와 서비스 비용 납부를 구분한 것이다.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도 이날 보도된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오만 측과 "호르무즈 해협 관리"에 대해 논의했다며 자발적 기금 논의에 힘을 보탰다.

그는 "국제 수로의 자유항행을 저해하는 강제 통행료나 유사 제도는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지만, 해협 관리를 위한 자발적 기금은 가능할 수 있다. 말라카·싱가포르 해협에서 이미 시험한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에 돌입한 이래 각국 유조선 등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제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해협을 지나려는 선박을 대상으로 사전 심사 및 비용 지급을 요구하고 있단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이란 측은 실제로 일부 선박으로부터 관련 비용을 징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은 6월 초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 기관인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신설한 데 이어, 29일엔 카젬 가라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의 오만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호르무즈 공동위원회 첫 회의를 열기도 했다. 공동위에선 미·이란 간 MOU 제5조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미국 성조기와 이란 국기 일러스트. 2026.03.23 ⓒ 로이터=뉴스1

미·이란 간 MOU 5조엔 '이란은 상선들의 호르무즈 해협 안전 통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조치하고, 적용 가능한 국제법과 연안국 주권에 따라 향후 해협 관리를 위해 오만 등 다른 연안국과 협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란 측은 이를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 관리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으며 비용 징수 또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이용 관련 수익화에 다르다넬스 해협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튀르키예는 1936년 '몽트뢰협약'에 근거해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에서 민간 선박의 자유 통항을 보장하는 대신 위생·등대·구조 서비스 비용을 징수하고 있다. 이는 자발적 기여금이 아닌 법정 비용이란 측면에서 말라카·싱가포르 해협 모델과 차이가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7월 1일부터 이 요율을 순톤당 5.83달러에서 6.70달러로 약 15% 인상할 계획이다.

따라서 오만 측의 이번 제안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비용의 '의무 부과'를 고집하는 이란과 전쟁 전과 같은 '자유 항행' 보장을 주장하는 미국 사이에서 '자발적 납부'란 형식으로 국제법상 허용 가능한 우회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 같은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바레인 방문 당시 "수수료든, 통행료든, 기부금이든 어떤 형태로든 해협 이용을 돈과 연결하는 시나리오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NYT는 "오만의 제안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가스를 수출해 온 다른 걸프국가들로부터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그 접점을 찾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ys417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