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트럼프가 두 번 물은 질문…'한반도의 시간' 다시 올까

류정민 특파원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류정민 특파원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중순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북한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순방 귀국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인데, 최근 워싱턴DC를 찾은 한 여권 관계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외교부에 확인해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대체 왜 이렇게 완강한가'라며 두 번이나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첫 임기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나 마주 앉았던 트럼프다.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아는 그가 정말 이유를 몰라서 그렇게 물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질문은 북한의 속내를 묻기보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려 하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접근법은 무엇인가'를 물은 것에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 범위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이후 북한은 협상보다 핵무력 고도화의 길을 택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그때 영변 핵시설이라도 단계적인 폐기 절차에 돌입해 물꼬를 텄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핵무장한 북한을 마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영변 폐기만으로 북한 비핵화가 보장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작은 합의가 다음 단계의 협상으로 이어지고, 제한적 진전이 더 큰 변화를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G7에서 트럼프에게 단기적으로는 핵물질 생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멈추게 하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추구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충분히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비록 북핵 이슈가 여전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후순위에 밀려 있다고는 해도, 한미 정상 간 대화라는 점에서 향후 북핵 대응에 있어 한미 간 공조의 가능성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다만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한국의 제안에 관심을 보일 것이고,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실익이 크지 않다면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단계적 비핵화가 실현 가능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핵무력을 헌법에 명시했고,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과제가 됐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국제사회가 포기하지 않은 목표다. 더구나 북한과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세력 간 협력이 강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런 외교적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위험을 방치하는 일일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이 중국 견제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한 징후가 보이고, 이재명 정부를 '친중 성향'이라거나 좌경화로 의심하는 시각이 미국 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원의 대럴 아이사(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은 최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출석한 청문회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하게 좌측으로 기울었고 중국을 향한 더 많은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고 주장해 한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강경 좌파'라고 주장하는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칼럼을 의회 기록에 포함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급기야 청와대가 직접 WSJ에 게재된 해당 기고문에 대해 반박했는데, 이런 인식은 한미 간 대북 공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만큼 오해 자체를 차단하려는 노력도 마땅히 워싱턴DC에서 외교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때마침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을 매듭짓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데 다시 관심을 보인다. 변함없는 한미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북러 군사협력 차단, 핵확산 방지, 인도·태평양 안정,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연대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반도의 시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전략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설득과 조율이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