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막후 지원에 용기내는 선박들…긴장 속 호르무즈 통행 '숨통'
고립 비용 폭등에 위험한 '암흑 항해' 늘어…"美안내에 3주간 70척 통과"
이란은 해협 통제 제도화 강화 중…백악관 "한두 달 내 공급 정상화"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전쟁 이후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였던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부 상선과 유조선이 미군의 막후 지원과 도전적인 선사들의 '암흑 항해'로 통행에 성공하면서 일부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다.
다만 여전히 전쟁 이전 대비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고, 이란의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면서 해협 통행은 고도의 긴장 속에서 이뤄지는 위태로운 외줄 타기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31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은 평시 대비 9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페르시아만 인근에는 1500~1600척의 선박이 이동하지 못한 채 묶여 있으며, 관련 선원 수는 2만 명 이상으로 파악된다. 전쟁 이전 하루 약 130척이 통과하던 핵심 에너지 수송로는 사실상 큰 폭의 위축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제한적이나마 선박들의 탈출이 확인되고 있다. 블룸버그 및 업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해역에 고립돼 있던 비이란계 대형 유조선 109척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9척이 해협을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선주는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와 교신하며 항행 관련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가 인용한 익명의 관리들에 따르면 중부사령부는 최근 3주간 상선 약 70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안내를 지원했다. 중부사령부는 선박들과 통신을 유지하며 위험 구간과 이동 시점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하루 평균 3척 수준으로, 전쟁 이전 통항량과 비교하면 극히 적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4월 하순 미국의 역봉쇄까지 이뤄지며 하루 1척만 겨우 지날 정도로 악화했던 상황보다는 나아졌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러한 탈출 감행의 배경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부담을 지목한다. 선박 중개업체 BRS 쉽브로커스의 유조선 브로커 알레산드로 겔리는 걸프 해역에 고립된 선박들이 항구 정박 상태만 유지해도 하루 1만~1만 5000달러(약 1510만~2266만 원)의 연료비와 인건비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전쟁 위험 보험료까지 폭등해 선박 가치의 2.5~4% 수준까지 치솟았다. 평시 보험료율이 0.25% 내외였던 점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이 최대 1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선원 임금 역시 전시 할증이 적용돼 평시 대비 약 2배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에 따라 상당수 선박은 위치 노출을 줄여 공격 위험을 낮추기 위해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끈 채 운항하는 '암흑 항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국적 선박 '빅스타'가 AIS를 끈 상태로 오만 연안에 가까운 항로를 따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브라질로 향하는 항해에 성공한 사례가 보고됐다.
다만 AIS를 꺼서 위치 정보를 감추면 전자해도상에서 주변 선박 확인이 불가능해져 충돌 위험은 오히려 급증한다. 오직 레이더와 조타수의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레이더는 신뢰할 수 있지만 조타수의 경험과 판단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장악력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산하 하탐 알안비야 중앙사령부는 지난 30일 밤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해협의 통합 관리권은 이란군이 행사하며 모든 선박은 IRGC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이란 승인 없는 항행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란은 전쟁 이후 임시 항로를 설정해 라라크섬 주변을 도는 경로를 중심으로 통항을 유도하고, 일부 선박에 대해 통행료를 부과하는. 일명 '테헤란 톨게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 3~5월에 진행된 호르무즈 해협 통항 895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란이 지정한 항로를 이용했으며, 약 40%는 항로 추적이 어려운 '다크 경로'로 분류됐다.
한편 미국과 이란은 현재 60일 휴전 연장과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협상 중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프로그램 중단과 해협 완전 개방을 요구하는 추가 수정안을 제시한 반면, 이란도 자체 수정안을 준비하고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케빈 해싯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 31일 ABC 방송의 '디스 위크'에 출연해 "2주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선박이 해협이 통과하고 있고, 정유시설이 대부분 멈춰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원유를 공급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유소 가동이 재개되면 전 세계 정제유 가격이 하락할 것이고 그 효과는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다만 원유 공급망이 정상화돼 정유소들이 충분한 원유를 공급받기까지는 한두 달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allday3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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