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미-이란 종전협상, 동시이행이 답이다[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전쟁은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렵다고 한다. 개전 초기에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적·전략적 목표가 중첩되며 구조는 복잡해진다. 조기 종전은 "지금까지의 희생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정치적 역풍을 부르고, 이는 권력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여기에 적대감의 누적과 신뢰 붕괴가 더해지면 대화 자체가 어려워진다.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국의 개입까지 겹치면서 종전 협상은 사실상 고차방정식으로 변한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그렇다. 4월 8일부터 휴전 중이지만 협상은 교착 상태다.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전쟁 목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면 종전 과정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로이터 여론조사에서 미국 응답자의 약 66%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개입의 목표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란 측이 27일(현지시간) 언론을 통해 공개한 14개 항목의 양해각서(MOU) 초안과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란의 전략은 '선(先) 보상, 후(後) 협상'으로 요약된다.
이란이 요구하는 초기 단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의 종전 선언이다. 둘째, 총 240억 달러(약 36조 원) 규모의 동결 자산 중 최소 120억 달러의 우선 해제다. 셋째, 해상 봉쇄 해제 절차 착수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개시다.
이 초기 조치가 이행된 이후에야 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60일간의 협상(연장 가능)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기간에 이란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수출을 제한하는 미국의 제재 역시 유예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와 해상 봉쇄 해제는 약 30일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다. 이란은 해당 기간 내 통항 선박 수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미국은 해상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 군함은 통항 대상에서 제외되며, 해협 통항 관리는 이란이 오만과 협력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제시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근 해역의 미군 철수 요구도 포함돼 있다.
특히 이란은 미국의 제재 완화나 자금 해제 등 가시적이고 검증 가능한 조치가 선행되기 전까지는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협상 결과는 양측의 공동 합의에 따라 동시에 발표돼야 하며, 미국의 일방적 발표는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향후 60일 내 최종 합의가 도출될 경우, 미국이 정권 교체나 정치적 이유로 이를 번복하지 못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속력 있는 결의안 형태로 국제법적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돼 있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MOU 초안 자체에는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란 고위급 인사들은 현지 언론을 통해 핵 프로그램이 협상의 "레드라인"이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알리 바게리 카니 외무차관은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협상 대상으로 삼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란 의회의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 에브라힘 아지지는 우라늄 농축 권리, 농축 우라늄 보유, 호르무즈 해협 통제, 제재 해제 등 핵심 사안은 모두 협상 불가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란의 이 같은 장외 여론전에 즉각 제동을 걸었다. 백악관은 해당 보도에 대해 "이란이 통제하는 매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공개됐다는 양해각서는 완전한 조작"이라며 "어떠한 이란 국영 매체의 주장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팩트"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협상에서 최우선 원칙으로 "이란의 핵무기 보유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을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3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에도 반대하며, 미국이 직접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구상"이라고 밝히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이란 내부 또는 제3국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를 내비쳤다가, 이후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이란 핵 개발 저지 목표가 뒤로 밀렸다는 내부 비판을 의식해 입장 정리가 명확하게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 대해선 미국은 모든 국가에 개방돼야 하며 미국이 이를 감시·관리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결 자금 해제와 관련해서 이란이 "올바르게 행동할 때만" 자금 접근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선제적 제재 완화에는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국가들이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이란과의 합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혀, 이란 문제를 중동 질서 재편 및 친이스라엘 블록 형성과 연계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최대 쟁점인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은 주권과 안보가 직결된 사안으로 절충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란 모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 타협의 동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견상 중간선거에 연연하지 않는 듯 기세를 올리지만, 미국 내 여론은 전쟁 장기화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고물가와 생활비 상승은 표심을 흔드는 핵심 정치 변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할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조기에 레임덕에 준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이란 역시 경제적 압박이 한계에 근접했다. 미군 공습으로 군사 인프라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장기간 봉쇄한 채 버티는 전략은 지속 가능성이 작다. 실익이 분명하다면 이란 역시 명분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신뢰가 붕괴한 상황에서는 강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협상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이 이란이 요구하는 1단계 잠정 합의를 수용하되, 120억 달러를 즉시 지급하는 대신 카타르 등 제3국에 예치하고, 이란의 핵 관련 조치의 검증과 동시 이행하는 방식이다.
미·이란의 소모적인 신경전이 길어질수록, 그 지연에 따른 비용과 고통은 고스란히 글로벌 경제와 세계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양국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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