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촉에도 시간 끄는 이란…"초강경파 득세, 최대 걸림돌"

이란, 여전히 "검토 중" 답변만…이란 외무 "휴전 위반 美 진정성 의심"
CNN "이슬람혁명 수호 초강경파 득세로 분열 심화…美와 대화조차 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어머니의 날'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듭해서 "곧 이란의 답변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측은 좀처럼 미국의 제안에 대한 수용 여부나 수정 제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 내부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는 '초강경파' 세력이 미국과의 협상 자체를 무산시키려 하면서 종전 합의에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전날(8일)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미군의 해상 봉쇄로 인한 이란 유조선과의 충돌이 다시 발생한 가운데 이란은 대화에 임하는 미국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국 제안에 대한 답변을 미루고 있다.

전날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오만만에서 대이란 해상 봉쇄 위반을 시도한 이란 국적 유조선 2척을 추가로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이란 매체는 "이란 해군이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가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군과 미군 함정 간 산발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중재국 파키스탄을 통해 전달한 종전 제안과 관련, 이란으로부터 "오늘(8일) 밤쯤 서한을 받을 예정"이라며 "어떻게 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9일) 프랑스 방송사 LCI의 마고 하닷 기자와 짧은 인터뷰에서도 거듭 이란의 답변을 "매우 곧(very soon)"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은 전쟁을 공식 종료하고 30일간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 협상 등을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14개 조항 양해각서(MOU)'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전날 해당 제안을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나아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전날 미국 지도부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법 침략"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란 국영 ISNA 통신에 따르면 아라그치 장관은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최근 페르시아만에서 미군에 의한 긴장 고조와 휴전 협정을 위반하는 수많은 행동은 외교의 길에서 미국 측의 동기와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더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외교적 과정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측의 불법 침략과 탐욕스럽고 비이성적인 태도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4월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해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6.4.11 ⓒ 로이터=뉴스1
이란 초강경파 '인내 전선' 득세…"보수 강경파도 혀 내둘러"

이란 측의 답변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란 내부에서 득세하는 강경 세력으로 인해 의견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CNN은 이날 이슬람 혁명 정신에 집착하는 초강경 단체인 '제브헤예 파이다리'(Endurance Front·인내 전선) 세력이 미국과의 협상을 무산시키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세력은 친서방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시아파 신정을 수립한 1979년 이슬람 혁명의 가치를 수호하는 이들로 스스로를 규정, 이란 보수 강경파를 뛰어넘는 반(反)서방 태도를 보고 있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 객원연구원 하미드레자 아지지는 CNN에 "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영원한 투쟁으로 여긴다"며 "시아파 국가가 세상 마지막 날까지 존속해야 한다고 믿으며, 그 종교적 이념에 있어 매우 광신적"이라고 말했다.

전쟁 발발 후 두 달 동안 미국과의 대화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온 이들은 테헤란에서 대규모 거리 시위를 통해 내부 권력 투쟁 과정에서 새로운 권력 기반을 구축하고, 언론이나 의회에서도 세를 넓히며 곳곳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인물인 사이드 잘릴리 전 국가안보 수장은 2021년 대선에서 1300만 표를 얻어 2위를 차지한 바 있고, 그의 형인 바히드 잘릴리는 국영 방송 IRIB의 고위 간부라고 CNN은 전했다.

미국과 신중한 협상을 진행해 온 이란 지도부는 다양한 내부 파벌을 끌어안으려 노력해 왔다. 지난달 파키스탄에서 열린 평화 회담에 파이다리 그룹 구성원을 포함시킨 것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다.

하지만 파이다리를 비롯한 강경파는 협상단이 협상 레드라인, 특히 핵 프로그램 논의 금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며 내부 분열을 심화하고 있다. 파이다리의 상당수는 미국과 협상하는 것 자체를 항복으로 간주한다.

파이다리를 대변하는 라자 뉴스의 한 기사는 "미국은 우리 최고지도자와 지도부를 살해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며, 여전히 (이란에는) 스티브 위트코프나 JD 밴스, 재러드 쿠슈너와 악수하고 미소 지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협상단의 회담 참여 자체를 비꼬았다.

이들은 이란측 협상단을 이끄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의 '외세 결탁'을 비난하며, 매일 밤 거리 집회에서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과 연관된 의원 7명은 협상팀 지지 성명에 서명을 거부하고, 일부는 아라그치 외무장관의 협상팀 배제를 요구했다.

물론 이들의 세력 확대와 분열 조장 시도는 이란 내부에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일깨웠고, 이들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이란과 역내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암와즈미디어의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 편집장은 "이 전략은 완전히 역풍을 만난 것 같다"며 "그들이 요란하게 떠들어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심각한 내부 분열에 빠진 것처럼 묘사하는 데 일조했다. 극단적 급진주의자들은 사방에서 반발에 부딪히며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초강경파가 사실은 미국과의 합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국 내 영향력을 확보하고 국내 권력 구조를 재편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