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포성은 멈췄지만…평화협정은 난망하다[최종일의 월드 뷰]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반미 선전물이 게시돼 있다. 2026.04.16 ⓒ 로이터=뉴스1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반미 선전물이 게시돼 있다. 2026.04.16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의 정면 충돌을 뒤로하고 추가 협상을 위한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파키스탄 등 주변국들도 중재에 분주히 나서는 상황이다. 이슬라마바드 1차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지만, 양측 모두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의 엘리엇 에이브럼스 선임연구원은 최근 팟캐스트에서 "실제 교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양측 모두에 불리하다"며 "회담이 결렬됐음에도 어느 쪽도 전쟁으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점은 전쟁 종식 의지가 존재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미·이란이 빠른 종전 원하는 이유

미국의 부담은 상당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명적인 리스크다. 미 국방부 역시 중동에 묶인 해군 전력의 피로 누적과 대중국 견제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봉쇄에 동참할 동맹국들을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뚜렷한 참여 없이 사실상 '나홀로 봉쇄'가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봉쇄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란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수십 년간 구축해온 '저항 경제'도 전쟁 충격을 마냥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5주간 이어진 미·이스라엘의 타격으로 기간 산업이 큰 피해를 입었고, 복구 비용은 약 2700억 달러(약 4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수출 차질로 하루 약 4억 3500만 달러(약 64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고, 핵심 산업 붕괴에 따른 실직 위기는 정권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신뢰 결여와 협상력의 한계

그럼에도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이다. 이란은 과거 두 차례 전쟁 모두 핵 협상 도중 공격이 시작됐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 역시 "하룻밤 사이에 해소될 수 없는 깊은 불신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여기에 전쟁 중 공습으로 생긴 권력 공백을 더 급진적인 강경파들이 메우면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란이 '핵 무력 강화'로 기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협상팀의 경험 부족도 변수다. 국무부 출신 베테랑 협상가 아론 데이비드 밀러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를 향해 "외교 점수 F학점"이라며 혹평했다. 비즈니스식 접근이 중동의 복잡한 역사·안보 맥락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015년 이란 핵협상에 참여했던 앨런 에어는 도이체벨레에 "경험 많고 숙련된 협상가들인 이란인을 상대로 밴스가 성공적으로 협상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오만 무스카트 협상에서 위트코프에게 농축 시설과 원자로의 기술적 차이를 여러 차례 설명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2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 주 해안 인근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모습. 2026.04.12. ⓒ 로이터=뉴스1
내부 조언 공백과 전략 인식의 괴리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내놓는 확언과 장담 역시 협상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당수 발언이 현실 설명보다는 정치적 의지 표명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란 측에는 협상보다 사실상 굴복 요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미국 언론들에서도 대통령의 인식과 실제 상황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고 체계의 문제라면 심각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밀러는 "대통령에게 최종 결정권은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는 내부 조언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도 엑스(X)를 통해 "지도자들이 트럼프에게 꾸밈없는 전문적 조언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이란, 서로 다른 계산

전직 CIA 분석가이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을 지낸 켄 폴락은 현재 상황을 "양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지렛대를 가졌다고 믿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군사적 재타격 능력과 경제 제재를, 이란은 해협 봉쇄 능력과 체제 생존력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계산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양날의 검이다. 전면전으로의 급격한 확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트럼프는 '끝없는 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이란은 '미국의 공세를 견뎌냈다'고 선전하는 이른바 '정치적 승리 선언의 맞교환'이 일정 부분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현격한 인식 차이는 평화 협정 도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포괄적 평화 협정보다는 저강도 충돌 속 균형이 당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온다. 미국은 전면 재개입을 피하고, 이란은 해협 통제력을 유지하며 버티는 구도다. 전면 충돌은 억제되지만 언제든 균열이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다. 또한 이 경우엔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해당 항로를 이용하는 국가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