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라늄농축 20년만 중단해"…강요받은 파격 [최종일의 월드 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언론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2026.4.12 ⓒ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언론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2026.4.1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란이 핵 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합의는 없을 것"이라며, 이란과의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빅딜' 관측에 또다시 무게를 실었다. 이는 군사시설 타격만으로는 '완전한 승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사일이나 지역 대리전 같은 복잡한 쟁점은 뒤로 미루고, 핵 물질 반출과 같은 상징적 성과를 통해 "오바마의 실패를 바로잡았다"는 정치적 서사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최근 이슬라마바드 회담에서 이란에 '20년간 우라늄 농축 중단'과 '경제 제재 완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일몰 조항'을 치명적 결함으로 규정했다. 그는 첫 임기 때부터 "시간이 지나면 이란의 핵 개발을 합법화해 주는 시한폭탄"이라며 영구적인 핵 포기를 지속해서 압박해 왔다. 지난 2월 말에도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가 "시한부 제약은 배제한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이번 20년 유예 제안은 기존의 강경 기조에서 상당 부분 물러선 파격적 양보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란은 5년간만 중단하겠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또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해외 반출 요구를 거부하고 희석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합의 당시 저농축 우라늄의 98%를 러시아로 반출했던 것과 달리, 현재 이란은 60% 수준의 고농축 우라늄 약 450kg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은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핵심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자산 동결 해제와 전쟁 관련 보상 성격의 자금 확보 등 최대한의 실리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입장을 완화한 배경에는 녹록지 않은 협상 환경이 자리한다. 미국외교협회(CFR) 제임스 린지 수석 부회장은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구조적으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봉쇄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수개월 뒤에야 본격화되는 반면, 이란은 오는 21일(미 동부시간 기준)까지 남은 휴전 기간 동안 미사일 전력을 복구하고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방공망을 재건하는 등 전력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5주간의 폭격에도 굴복하지 않은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재개하는 것은 트럼프가 기피하는 '끝없는 전쟁'의 늪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봉쇄로 인한 유가 급등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동맹국 이탈을 초래하는 자해적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전의 부담과 경제적 역풍 사이에서 사실상 외통수에 놓인 형국이라는 진단이다.

이러한 다급함은 실질적인 행보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휴전 만료 전 두 번째 대면 회담을 갖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보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양측을 중재해 온 파키스탄과 이집트, 튀르키예 역시 전쟁 종식을 위한 최종 합의를 도출하고자 향후 며칠간 미국·이란과 회담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협상의 걸림돌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깊은 불신이다. 최근 이란 대표단이 기술적 논의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JD 밴스 부통령이 회담 종료를 갑작스럽게 선언한 사건은 이란 측에 큰 당혹감을 안긴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회담 이후 "미국의 진정성과 성의"를 문제 삼았다.

미국의 고민은 이번 협상이 과거 JCPOA와 유사한 결과로 귀결될 경우, 왜 합의를 파기하고 전쟁까지 치렀는지에 대한 명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JCPOA와는 차별화된 결과물을 반드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에서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한 쟁점은 이란의 핵 주권 주장과 자산 동결 해제,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통행 징수 문제였다. 미국은 자산 동결 해제와 제재 완화를 '당근'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핵심은 결국 호르무즈 해협 통제 방식이다. 만약 호르무즈 통행료 징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통제가 자리 잡는다면, 미국이 '명분 없는 전쟁'을 벌였을 뿐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새로운 톨게이트를 창조해 세계 경찰은커녕 세계의 말썽꾸러기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거세질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이 며칠간의 외교전이 중동의 평화는 물론,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