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장 앉는 美-이란…승패는 이미 가려졌다 [최종일의 월드 뷰]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달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진행 점검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백악관 엑스 계정, 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달 28일 대(對)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Epic Fury) 진행 점검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백악관 엑스 계정, 재판매 및 DB금지)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전쟁 직후인 지난 3월 2일 연설에서 네 가지 전쟁 목표를 제시했다. △미사일 능력 파괴 △해군력 전멸 △핵무기 개발 저지 △역내 테러세력 지원 중단이다. 연설문에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나, 이 시기 트럼프는 '정권 교체'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이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의 통제권에서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한 달여의 포화가 멈추고 2주간의 휴전에 들어간 지금, 과연 미국이 무엇을 달성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워싱턴은 군사적 승리를 자부하고 있으나, 현실과의 괴리는 결코 작지 않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해군력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정작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물리적으로 해제하지 못했다.

이란의 지상 미사일 발사대는 상당 부분 파괴됐을지언정 지하 깊숙이 매설된 시설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미 정보당국의 평가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제거됐지만 후계 체제가 즉각 가동됐다.

전쟁의 흐름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트럼프는 민간 인프라 초토화라는 최후통첩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지만, 이란은 끝내 버텼다. 이란은 지난 40년간 제재를 일상처럼 견디며 성장보다 생존에 최적화된 체제를 구축해왔다.

반면 국제 유가 상승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 장기화는 가볍지 않은 정치적 짐이다. 이란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제 시선은 이번 주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협상으로 쏠린다. 전망은 회의적이다. 이란이 내놓은 '10개 항'은 대부분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 주어진 시간은 단 2주뿐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이란 핵협상(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은 본격 협상부터 최종 타결까지 약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협상을 앞두고 '핵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내에서 매우 생산적인 체제 변화가 일어났다"고 평가하면서 "우라늄 농축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백악관 역시 우라늄 문제를 차기 협상의 최우선 의제로 설정했다. J.D. 밴스 부통령도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협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테헤란 샤흐란 연료 저장시설에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격이 보고된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3.8 ⓒ 로이터=뉴스1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을 고려하면,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빅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군사시설 파괴만으로는 완전한 승리를 주장하기 어렵지만, 핵 능력의 영구적 제거는 역사에 남을 강력한 정치적 트로피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트럼프는 일부 제재 해제와 동결 자산 해제라는 '당근'을 던지며 '이란 핵 무력화'라는 치적을 챙기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미 관련 경험이 있다. 2015년 핵합의 당시 이란은 약 1만kg에 달하던 저농축 우라늄의 98%를 국외로 반출해 보유량을 300kg 수준으로 줄였고, 상당량이 러시아로 이송됐다. 이는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낮추는 대신 제재 완화와 민수용 핵협력을 얻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란은 60% 수준의 고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보유하며 이를 핵심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처럼 쉽게 국외 반출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란으로선 값비싼 카드로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핵 문제를 둘러싼 충돌은 이미 표면화됐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10개 항 합의'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냈다고 주장하며 '우라늄 농축 권리 인정'을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이란에 확실한 학습 효과를 남겼다. 바로 '호르무즈의 위력'이다. 이란은 몇 차례의 제한적 공격만으로 보험시장을 얼어붙게 했고, 통행량을 사실상 '제로(0)'로 만들었다. 자신들이 처참하게 부서져도 호르무즈만 붙들고 있으면 미 대통령을 협상장으로 불러낼 수 있다는 전략적 지렛대를 확인했다. 심지어 이란은 이제 해협을 통행료를 징수하는 수익 모델로 전환하려는 야심까지 내비치고 있다.

미국은 군사 시설 파괴로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을지 모르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장악과 영향력 입증으로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한부 휴전 뒤에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평화일지, 아니면 더 큰 충돌의 서막일지는 이제 이슬라마바드의 협상 테이블에 달렸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