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석유 봉쇄에 무너지는 쿠바 병원…암흑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NYT, 쿠바 현지 취재로 에너지 위기 처한 병원 현장 조명…항암 치료·투석 멈춰
멈춰선 구급차·텅빈 약국·쓰레기 방치된 거리…"美, 베네수처럼 나서달라" 요구도

한 여성이 26일(현지시간) 멕시코의 누에스트라아메리카 선단이 가져온 인도적 지원의 수혜를 받은 쿠바 하바나 윌리엄 솔레르 소아 심장병 센터에서 딸을 돌보고 있다. 2026.3.26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경민 기자 = 미국의 해상 봉쇄가 석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쿠바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국적인 정전이 반복되며 병원에서 수술이 취소되고 구급차가 멈춰 서며 예방이 충분히 가능한 사망 환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쿠바 현지 취재를 통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쿠바의 기대 수명과 영아 사망률은 선진국과 비슷했다. 의사 대 환자 비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쿠바 정부가 예산의 약 5분의 1을 의료에 지출할 정도로 신경을 써온 덕분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작된 미국의 제재 강화로 무상의료 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미국은 병원의 노후장비 교체를 막았고 국제 결제와 물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의료용품 회사는 제재 위반을 우려해 쿠바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여기에 트럼프 2기 들어 시행한 석유 봉쇄의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폐가 스스로 공기를 뿜어낼 수 없는 유전 질환을 앓고 있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호르헤 페레스 알바레스(21)는 정전으로 인해 하루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예비 배터리에 의지해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다. 예비 배터리마저 몇 주 동안 세 차례 전국적인 정전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호르헤의 어머니 제니아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의 생명은 전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쿠바 의사들은 에너지 위기로 인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망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증언했다. 하바나 최대 소아병원 마취과 과장인 알리오스 페르난데스 박사는 "사망자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확실히 많다"고 강조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출·퇴근을 할 수 없어 병원에선 수술을 취소하고 있고, 잦은 정전으로 인해 항암 치료나 투석 같은 치료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병원에 우선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번 달엔 전국적인 정전이 세 차례나 발생, 비상 발전기에 의지하는 병원의 대응 능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급차는 연료 부족으로 발이 묶여 있는 경우가 많고, 사실상 파산 직전인 정부가 의약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으며 약국은 텅 비어 있다고 NYT는 전했다.

공장은 디젤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약품 생산 대부분이 중단됐다. 백신 제조 회사는 항공유 부족으로 원료를 실어 나르던 항공편이 취소되며 원료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정전이 계속되면 냉장 보관 중인 백신 재고도 곧 폐기해야 할 수 있다.

나아가 식량 부족으로 저체중 임산부와 신생아도 늘어나고 있다. 델가도 페루예라 박사는 2월에 신생아 3명이 사망했다며 항생제 부족으로 감염이 늘며 "근래 몇 주 동안 극심한 조산이 급증했다"고 우려했다.

22일(현지시간) 어두운 쿠바 하바나 거리를 달리는 버스. 2026.3.22 ⓒ 로이터=뉴스1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도 에너지 위기로 인해 쓰레기 수거차가 운행을 못해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쿠바의 현실을 전했다.

호텔에서 일하는 라파엘 가르시아 고메스(63)는 "그들은 쿠바를 푸에르토리코처럼 또 다른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시도할 경우 무기를 들겠다고 경고했다.

하바나에 거주하는 언론사 '벨리 오브 더 비스트' 기자 리즈 올리비아 페르난데스(32)는 "이건 협상이 아니다. 공정한 대화도 아니다"라며 "폭력배와는 거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쓰레기 수거차가 수거하지 못해 썩어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에서 택시 운전사 페드로는 "여기는 지옥"이라며 "여기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고기나 생선을 먹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이어지면서 대다수 쿠바인은 어떠한 변화라도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했던 것처럼 무력 개입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페드로는 미국이 쿠바 지도부에 "마두로에게 했던 것처럼"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며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하루에 빵 한 조각만 줘야 굶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이란 공격에 이어 "쿠바가 다음 차례"라고 말해 위협을 이어갔다. 앞서 16일에는 "나는 쿠바를 점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정부에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쿠바 정부는 군사적 대립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 중임을 인정한 상태지만 여전히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

km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