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호르무즈 면전압박…다카이치, 에너지·방산 '측면지원' 제안

다카이치, 미일 정상회담서 '미사일 공동개발' '美원유 공동비축' 등 제안
트럼프, 日주둔미군 규모 거론하며 군사적지원 요구…韓도 유사한 상황 직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만나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에 맞서 역할 확대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4만 5000명의 미군을 일본에 주둔시키고 있다"면서 "일본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그래왔기 때문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며 전혀 놀랍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트럼프는 일본이 석유의 90% 이상을 해협을 통해 얻고 있고, 중국, 유럽도 마찬가지라고 짚으며, "역할을 해야 할 큰 이유가 있다"라고도 했다.

미국은 일본의 방위를 위해 큰 자금을 지출하고 있는 데다 당사자이기도 하니 호르무즈 해협 항로를 열기 위해 역할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받은 동맹국 정상이 그를 대면하는 첫 자리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트루스소셜에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은 물론 적대적 관계인 중국 등 5개국을 콕 집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많은 영향을 받는 많은 국가가 전함을 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기자들과 만나선 7개국을 언급했는데, 구체적인 국가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독일, 호주, 캐나다 등을 추가로 포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돌연 17일에는 "미국은 대부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부터 중동에서의 이란 테러 정권에 대한 군사작전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라면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일본, 호주,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각국의 소극적 입장에 격분한 듯한 글을 올렸다.

그러더니 18일에는 다시 태도를 바꿔, "해협을 이용하는 나라들이 책임지게 하면 어떻겠느냐"라며 동맹에 방어를 전가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방미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날 공개된 회담에서는 이란 핵개발 반대 등 일본의 기본 입장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군사적 지원 방안에는 말을 아꼈다.

다카이치는 회담 모두발언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와 같은 일련의 행동을 규탄한다"면서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외무상이 이란 외무장관과 그러한 활동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면서 직접적으로 이란과 관련해 대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가져왔다"라면서 "에너지와 희토류와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논의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약 1시간 30분간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해협 항행 안전 확보를 위한 함정 파견과 관련, "민감한 논의를 진행했다"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는 매우 중요하지만,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이에 대해 상세히 명확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즉각적인 군함 파견에 나서기보다, 국내법과 평화헌법 제약을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 자위대 파견이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다른 형태의 기여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미일 동맹의 억지력 및 대응력 강화를 위해 "미사일의 공동 개발, 공동 생산을 포함한 폭넓은 안보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협력과 관련해선 "일본과 아시아의 원유 조달을 염두에 두고 미국산 에너지 생산 확대에 미일이 함께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산 원유를 공동으로 비축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일본이 직접적인 해협 파병 대신 에너지 공급 안정, 원유 공동 비축, 방산 협력 확대, 정보 수집·감시 등 측면 지원 패키지를 내놓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카이치는 방미 전 "정보 수집 활동을 포함해 법적으로 허용되는 다른 선택지들을 모색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은 최첨단 기뢰 제거 전력을 갖춘 해상 부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평화헌법에 따라 실제 무력 충돌이 종료된 이후에만 해당 부대를 파견할 수 있다. 한 예로 2019년 일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호위 작전을 요청한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2020년에는 해상자위대 구축함을 파견해 해협 인근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감시하는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또 예외적으로 동맹국이 공격받아 일본의 존립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파견이 허용되는데, 이 경우 일본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이번 사태가 이러한 파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구도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역시 약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중동산 원유와 가스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당사국'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의 요구에 정면으로 "노"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직접 파병 대신 급유, 정보 지원, 군수품 및 미사일 생산 확대 같은 우회적 방식으로 일정한 형태의 기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 바 있다.

2017년 미국 핵항모 칼빈슨호와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2척이 필리핀 해역에서 공동 훈련을 하고 있다 . ⓒ AFP=뉴스1

ryupd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