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협상 "진전" 평가에도 여전히 험로…영토·나토 등 가시밭길

트럼프 "우크라, 미국에 감사 표현 안해…유럽, 러 석유 구매"
EU, '수정 종전안' 제시…병력 규모·영토 협상 등 우크라에 유리하게 수정

1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부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면서 큰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테르노필 시에서 구조 요원들과 의료진이 작업하고 있다. 2025.11.19. ⓒ AFP=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미국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종전안)을 두고 미국과 우크라이나, 유럽이 23일(현지시간) 논의한 끝에 진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앞으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8개 항목으로 구성된 종전안이 우크라이나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태도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및 유럽 대표단과 종전안에 대한 논의를 한 후 "엄청난 진전이 이뤄졌다"며 "매우 합리적인 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기분이 든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도 성명을 내고 "이번 협의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논의에서 입장 조율과 향후 절차 마련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논의 결과를 반영해 업데이트되고 정교화된 평화 프레임워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10.17 ⓒ AFP=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EU, 미국의 종전안 수정…우크라 병력 제한·영토 협상 기준·나토 가입 등 수정

발표된 협의 결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기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애초에 우크라이나에 지나치게 불리했던 종전안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종전안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양보하고 △우크라이나 병력 규모를 현재 9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축소하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를 골자로 한다.

그러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종전안에 포함해야 할 원칙으로 △무력을 통한 국경 변경 불가 △우크라이나군 규모 제한 반대 △EU의 역할과 이익 반영 등을 강조했다.

이에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일부 조항을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수정한 종전안을 회담에서 제시했다.

수정안에는 당초 종전안에서 60만 명으로 제한한 우크라이나 병력을 평시 기준 80만 명으로 상향하도록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돈바스 지역을 양보하는 제안 대신 현재 전선을 기반으로 영토 협상을 진행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유럽이 동결한 러시아 자산을 해제하고 이를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내용 대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보상을 끝낼 때까지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금지하되 미국과 유럽의 '집단방위' 방식의 안전보장 보장 내용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회원국의 만장일치에 달려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나토의 집단방위 조약인 5조에 준하는 안보 보장을 제공하도록 수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마린원(미 대통령 전용헬기)에 탑승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1.22.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트럼프 "우크라, 美노력에 감사 안해…유럽, 러시아 석유 구매 지속" 불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태도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어 수정안이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강력하고 적절한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있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쟁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렸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우리의 노력에 감사의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고,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쟁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젤렌스키에게 미국의 지원에 충분히 감사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했고, 결국 회담은 결렬된 바 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를 위한 노력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평화를 향한 모든 단계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유리한 협상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수정안을 수용한다 해도 러시아가 전쟁을 벌인 주요 요인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빠져 있고, 나토 수준의 안보 보장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은 러시아가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루비오 장관도 이날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세부 항목 등 여전히 결정해야 할 주요 사안들이 남아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이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