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5500억불 '실행 리스트' 공개…에너지·AI·광물 집중
원전 등 에너지 인프라 3845억 달러, AI 750억 달러 등 5대 분야 구체화
일본 주요 대기업 대거 참여…한국 3500억불 대미투자 협상 가늠자 될 듯
-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이 한발 앞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업 분야를 발표해 주목된다.
에너지, 인공지능(AI), 전자 등 제조업과 첨단산업 분야에 필요한 인프라에 투자가 집중됐고, 일본 대표 대기업들이 대거 투자에 참여한다.
한국과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와 관련해 방식과 시기, 이익 배분, 집행 분야 등에서 아직 합의하지 못했지만, 이번 미일 간 합의 내용은 향후 한미 간 합의 내용의 윤곽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미국 백악관은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한 '미일 전략적 무역 및 투자 협정'이라는 제하의 팩트시트(설명자료)를 통해, 일본의 대미 투자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
백악관은 설명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도쿄에서 일본의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약속을 진전시키는 주요 프로젝트들을 발표했다"면서 "아울러 미국 산업 기반을 한층 더 활성화하기 위해 일본과 역사적인 핵심 광물 협정에도 서명했다"라고 밝혔다.
또 "미국산 에너지의 대규모 구매 계약을 확보했으며, 불법 마약 밀매 근절을 위한 미일 협력도 심화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구체적인 금액과 참여 기업을 발표한 투자 분야는 △핵심 에너지 인프라△인공지능(AI) 인프라 △전자부품 △핵심 광물 △제조업 및 물류 투자 등 크게 5개다.
일본의 대미 투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에너지로 최대 3845억 달러 규모의 구체적인 투자 분야가 제시됐다.
우선 3320억 달러를 투자해 원전, 송전망, 천연가스 설비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웨스팅하우스, GE버노바, 히타치, 소프트뱅크, 킨더모간 양국 주요 기업이 협력한다.
여기에 GE 버노바(터빈 및 발전 설비, 250억 달러), 도시바(변전소 장비, 250억 달러), 캐리어(냉각 시스템, 200억 달러) 등에 대한 투자가 더해진다.
AI 인프라 구축에는 미쓰비시 전기와 함께 데이터센터 전력 시스템 분야에 300억 달러, TDK와 함께 첨단 전자부품 및 전력모듈 분야에 250억 달러, 후지쿠라와 협력해 고속 통신용 광섬유 케이블 분야에 200억 달러를 각각 투자할 예정이다. 이 투자들은 AI 및 클라우드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전력, 전자, 통신 인프라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자부품 분야에서는 무라타 제작소가 최대 150억 달러 규모로 첨단 전자부품, 특히 다층세라믹콘덴서(MLCC)·인덕터·전자기간섭(EMI) 필터 등 핵심 수동소자 생산시설을 미국 내에 구축할 예정이다.
파나소닉은 미국 내 에너지저장장치(ESS)·배터리·전자기기 부품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진한다.
핵심광물 분야에서는 미국 내 암모니아 및 요소 비료 공장 건설에 최대 30억 달러, 미국 서부 지역의 구리 제련 및 정련 시설 건설에 20억 달러가 투자된다. 농업과 제조업 공급망의 핵심 소재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제조업 및 물류인프라와 관련해서는 미국산 원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미 남부 지역 항만 및 수로 개선에 6억 달러, 고온·고압 다이아몬드 연마재 제조 시설 건설에 5억 달러, 리튬·인산철(LFP) 생산 시설 건설에 3억 5000만 달러가 각각 투자된다.
이번에 제시된 금액은 5500억 달러에는 못 미치는 약 4800억 달러 규모다. 구체적인 투자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조선업 분야에서는 투자, 조달, 인력, 기술 관력 정책을 조율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는데, 추후 투자 금액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 에너지 수입에 있어서는 일본의 도쿄가스와 JERA가 각각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다른 수출 용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물량의 장기 구매계약 의향서를 맺었다.
이밖에 백악관은 일본의 약속에 따라 도요타가 미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일본에서 역수출하고, 일본 내 유통망을 미국 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은 '기술번영협정' 양해각서에도 서명했다고 백악관은 설명자료를 통해 밝혔다. AI, 6G(6세대이동통신), 제약 및 생명공학 공급망, 양자정보과학, 핵융합 에너지, 우주 분야 등이 포함된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일본이 미국 산업에 5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5% 기준관세를 수용하기로 한 획기적 경제·무역 협정을 발표했다"면서 "오늘 발표된 일본과의 합의는 앞서 체결된 말레이시아 협정과 7월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미국 국민에게 실질적 이익을 주는 강력한 협정 체계를 완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미국과 3500억 달러 규모의 집행 방식과 시기, 사업분야, 이익배분 등을 놓고 대립하고 있어 이번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일본과의 관세합의 후속 협상에 따른 투자협정 체결 가능성은 매우 낮을 전망이다.
다만 이번 일본과의 협정의 사례로 볼 때 향후 한미 간 협정도 반도체, 배터리, 조선, 원전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 주요 기업이 미국 측이 요구하는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금액을 제시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반도체, 한화오션·HD현대·삼성중공업이 조선 분야에,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이 배터리에 얼마를 투자한다고 제시하는 식이다. 다만 이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대미 투자가 상당해 추가적인 투자 금액 제시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를 수 있다.
백악관은 이번 협정 투자 내용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다음과 같은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라고 설명한 만큼, 한국 정부를 상대로도 해당 산업분야에 대한 참여 기업과 투자 금액 제시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 측은 지난 7월 30일 미국 측과 구두 합의 수준의 관세 협상 합의 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중 1500억 달러를 조선업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 조선업 분야에서 투자 확대 등 새로운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27일 트럼프 대통령과 동승한 일본행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에서 "한국은 이미 했던 것보다 더 크게 미국 조선업에 투자하려는 훌륭한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팩트시트에도 일본의 대미 투자금액의 집행 시기, 투자 배분 방식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집행 시기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지난 9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5500억 달러가 투자된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미국 대통령에게 국내총생산(GDP)의 0.5%포인트(P)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로이터통신도 일본의 대미 투자는 트럼프 2기 임기 내인 2029년 1월 19일까지 집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한미가 관세 및 무역 합의 후속 협상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투자방식과 집행 시기 등 일부는 공식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AI, 양자컴퓨팅, 6G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일본과의 협정에도 포함돼 있는 내용으로, 일본처럼 구체적인 투자 액수는 아니더라도 한미 간 특정 산업분야에서 협력 양해각서를 맺는 서명식이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ryupd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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