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도 무기로 쓰는 트럼프…"무역협상 韓 영향권"

폴리티코 "개최국 지위 활용해 비자·입국 통제 등 영향력 행사 가능"
이스라엘 겨냥한 국제 축구무대 퇴출 시도 저지도 나설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국제 축구 무대 퇴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IFA 회장 지아니 인판티노와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를 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유럽축구연맹(UEFA)은 다음 주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스라엘의 회원 자격 정지를 표결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FIFA와 UEFA가 러시아를 국제 대회에서 배제한 전례를 따르는 조치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아랍연맹의 보이콧으로 인해 이웃 국가들과의 축구 경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1991년부터 UEFA에 가입해 유럽 국가들과 경기를 치러왔다. 그러나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 이후, UEFA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이스라엘에서의 국제 경기를 무기한 중단시켰다. 현재 이스라엘 대표팀은 월드컵 예선에 참가 중인데 헝가리에서 홈경기를 치르고 있으며, 유럽 여론은 가자지구 공습 이후 이스라엘에 더욱 비판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UEFA 회원국 절반 이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팀의 유럽 대회 참가 자격 정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마카비 텔아비브 유로파 경기에서는 최근 '제노사이드(대량학살)'라는 문구가 적힌 시위 현수막이 걸렸다. UEFA 관계자들은 "경기장 내 팬과 선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며 UEFA가 주관하는 유럽 대회에 대한 이스라엘의 참가 제한 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UEFA가 이스라엘의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은 FIFA에 강한 압력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2023년 6월3일(현지시간) 2023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 이스라엘 대 브라질 경기가 아르헨티나 산후안에서 열린 가운데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이 세 번째 골을 자축하고 있다. (자료사진) 23.06.0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이스라엘 대표팀의 월드컵 참가를 막으려는 시도는 전면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평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인질들이 돌아오고 전쟁이 끝나는 합의가 될 것 같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인판티노 역시 UEFA에 인내심 있는 접근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개최국으로서의 이점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유엔 총회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국가들의 대표자들에게 비자 제한을 가하며 이 권한을 행사했다. 브라질 보건장관은 유엔 본부 인근에서만 이동이 허용됐고, 이란 외교관들은 쇼핑에도 국무부 허가가 필요했다. 콜롬비아 대통령은 친팔레스타인 행사 참석 후 비자가 취소됐다.

이란은 트럼프가 지난 6월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여행이 전면 금지된 12개국 중 하나다. 해당 명령은 선수, 코치 등 대회 참가자에게는 예외를 두지만, 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국은 티켓 소지자에게 국경 무료 입국을 허용했던 역사적 관례에도 이란 팬들은 내년 여름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CNN은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이 브라질 팬들의 비자 발급을 차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브라질 선거관리위원회의 온라인 정치 발언 규제에서 비롯된 갈등이 배경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브라질 사법 관계자와 가족에 대한 비자 제한을 실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국제 스포츠 행사에 외교적 목적을 위해 개입한 전례가 있다. 이란 남자 폴로 대표팀은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비자를 거부당했고, 베네수엘라 리틀리그 팀과 쿠바 여자 배구팀도 비자 발급이 거부된 바 있다.

폴리티코는 이러한 사건들에 비춰 올가을 월드컵에 참가할 48개국 명단이 확정된 가운데 더욱 중요한 갈등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참가를 확정한 국가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학적 이점을 노리며 보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며 그 예로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들었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여전히 한국과는 새로운 무역 협정을 추진 중"이라며 무역 협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 월드컵 참석 비자를 내주지 않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또 아르헨티나 중간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와 가까운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아들이자 백악관 FIFA 월드컵 태스크포스 책임자인 앤드루 줄리아니는 "스포츠 외교가 외국 지도자들에게 대화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내년 6월 월드컵이 개막할 무렵에는 이러한 해외 분쟁 중 일부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