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모든 나쁜 일에 책임" 이런 말 듣는 40살 실세[최종일의 월드 뷰]
강경 이민정책 설계자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황태자였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와 결별하면서 현재 핵심 실세로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흔히 언급된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거쳐 백악관 문지기(gatekeeper)를 맡고 있는 '얼음 아가씨' 와일스, 트럼프가 지난 8월 초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로 "현시점에선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밝힌 밴스 그리고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하게 돼 영향력이 막강해진 루비오는 틀림 없는 실세다.
트럼프의 정책 결정과 추진에 실제 가장 강한 입김을 불어 넣는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꾼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백악관에서 국내 정책을 총괄하는 부비서실장과 여러 부처를 조율할 수 있는 국토안보보좌관을 겸직하고 있는 스티븐 밀러(40)가 맨 처음 언급돼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30대 초반에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통령 선임 고문 겸 백악관 연설문 작성 국장을 맡아 이민 정책을 수립했던 그는 이젠 백악관 정책 결정 과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미 정부와 공화당 내에서 그의 별명은 "그림자 국방장관" "밀러 총리" "국토안보부 보스" "밀러 대통령"이고, 미국 언론들은 그를 "건드릴 수 없는 권력(untouchable force)"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비선출직 인물 중 한 명" "트럼프의 브레인"이라고 표현한다. 한 고위 관리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밀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말할 정도다. 상대 진영에선 악명이 높다. 벤 레이 루한 상원의원(민주당)은 NBC에 "밀러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에 책임이 있다"고 맹비난했다. 언론인 진 게레로는 밀러의 전기 제목을 '증오 선동가(Hatemonger)'로 지었다.
밀러가 관여하는 이민정책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반격 성격인 문화전쟁이 주로 미국 내부 문제다 보니, 그의 지명도는 한국에선 아무래도 높지 않다. 하지만 미 당국의 비자 발급 제한에 따라 한국 유학생들이 큰 혼란을 겪고, 또 최근 조지아주 한국 배터리 공장 현장의 한국인 구금 사태가 벌어지면서 미국의 초강경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의 배후에 있는 스티븐 밀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민 정책을 밀러에게 모두 맡기면 이 나라에 1억 명만 남을 것”
1985년 8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부유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밀러는 명문 사립대 듀크대학 출신이다. '반골(反骨) 기질'을 가진 밀러는 가족, 고향, 고등학교의 자유주의 성향에 대해 일찍부터 반항하기 시작했고, 우파 토크 라디오를 들으며 반이민적 사상을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엔 보수 정치 운동을 벌이고, 학교 신문 보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극단주의적 정치관이 심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보좌관 시절에는 우파 웹사이트인 '브레이트바트 뉴스'를 이끌던 스티븐 배넌과 인연을 맺었고, 2016년 1월 트럼프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밀러는 2019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발표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영혼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충격"을 경험했으며,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느꼈던 모든 것이 이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나라 최고 직위 후보자에 의해 표현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이념적 목표 실현을 위한 옹호자를 찾은 것이었다.
밀러는 백악관 입성 뒤 트럼프 연설 초안을 대부분 작성했는데 연설 전에 트럼프와 대화하여 그의 좌절과 불만을 듣고, 그것들을 언어와 정책적 해법으로 풀어냈다. WP는 트럼프는 이민 정책에 관심이 높지만, 이민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밀러에게 크게 의존했다고 전했다.
밀러는 2020년 트럼프의 재선 도전 패배와 이듬해 1·6 연방의회 폭동 사태 이후에도 트럼프 곁에 머물렀다. '투표가 조작됐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을 되풀이했던 그는 유급 고문으로 활동하며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의 의제를 홍보했다. 또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이민과 교육, 소수자 우대 정책, 트랜스젠더 권리 등과 관련된 수십 건의 소송을 제기하며 트럼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나타냈다. 그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활용해 고수익 컨설팅 계약을 따내려 하지도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충성심'을 바탕으로, '마가'에 입각한 각종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전사들을 뽑았는데, 밀러는 앞 순번이었다. 트럼프와 밀러 모두와 가깝게 지낸 보수 활동가로, 최근 피격 사망한 찰리 커크는 지난 1월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측근 중 일부는 경력상의 이점이나 거래적 이유로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스티븐은 대통령의 의제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밀러의 반이민 열정은 트럼프를 능가할 정도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한 캠페인 회의에서 트럼프는 이민 정책을 밀러에게 모두 맡기면 이 나라에 1억 명(현재 약 3억5000만 명)만 남을 것이고, 그들 모두 밀러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인 내셔널리즘과 반이민 주장하는 극우 웹사이트와 이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큰 논란
밀러는 2019년 WP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민관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민은 다른 모든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며 의료와 교육시스템·공공안전·국가안보·경제금융에 대한 영향을 들었다. 그러면서 "목표는 우리 사회의 활력, 단결, 화합, 그리고 강화를 증진하는 이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교과서적으로 답했는데, 본심은 다른 곳에서 발각됐다.
미국의 비영리 법률지원기구인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2019년 소송을 제기해 입수한 밀러의 이메일에는 그가 백인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반이민 관점을 주장하는 극우 웹사이트와 이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참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민자를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프랑스 작가 장 라스파유의 인종차별적 소설 '성자들의 수용소(The Camp of the Saints)'를 자주 언급하고 인용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 소설은 대규모 난민 함대가 유럽으로 몰려오자 유럽 문명이 도덕적 무력감과 혼란 속에서 붕괴한다는 내용이다.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자, 당시 55개 시민단체는 트럼프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스티븐 밀러는 그의 경력 내내 극단적인 정치적 수사와 정책으로 편견, 증오, 분열을 조장해왔다. 최근 드러난 그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는 그가 봉사하기에 부적합하며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고 비난했다.
반이민 극단주의자로서 그의 악명은 친척도 등을 돌리게 했다. 밀러의 외삼촌으로, 은퇴한 신경심리학자인 데이비드 글로서는 2018년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밀러가 러시아 제국에서 반유대주의 학살을 피해 도망쳐 온 조상들의 기억을 무시했다며 그를 "위선자"라고 불렀다.
각종 비난에도 밀러는 2기 행정부에서 영전했다. 전방위적 이민 강경책은 시행 초기부터 법원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거나 새로운 법적 논리를 내세우며 이민 억제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합법적 지위를 가진 이민자들조차 "공포와 혼돈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벌어진 조지아주 한국 배터리 공장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 사태도 무자비한 단속의 일환이다.
이민자를 잠재적 위협이나 사회적 부담으로 규정해 막무가내로 막는 밀러의 정책은 마가 지지층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 사회 내부의 인종적·문화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경제적 경쟁력을 잃게 만들며, 국제적 리더십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또 대중의 감정적 분노와 불안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포퓰리즘 정치 역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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