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이스라엘…"뒷짐 진 트럼프가 백지수표 줬다"

美국무 방문 중 가자시티 점령 지상작전 돌입…트럼프 "지켜봐야 한다" 방관
바이든 시절 압박과 대비…NYT "네타냐후 막을지 과거 외교성과 잃을지 기로"

4월 7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04.07. ⓒ AFP=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에 자유 재량권을 부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갈등 격화를 지켜보기만 해 이스라엘이 점점 더 강경해지면서 중동이 평화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24년 초,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군사 작전을 준비하던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민간인 보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미국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가자시티 점령 지상작전에 대해 "잘 모르겠다.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동안 자신을 '세계 평화 중재자'로 내세우며 가자 전쟁 종식을 촉구해 왔지만, 최근에는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데 그치고 있다. 전직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인 대니얼 커처는 "트럼프는 전쟁 종식과 인질 석방을 원하지만, 전략도 없고 네타냐후를 압박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며 "트럼프의 외교는 스스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주 중동을 방문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역시 이스라엘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공세 중단을 요청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루비오는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듣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루비오는 15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하마스를 반드시 패배시킬 것"이라는 이스라엘 측 입장을 지지했고, 평화 협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인질 석방을 위한 휴전 협상을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가자시티 공세가 평화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루비오는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지상작전에 돌입한 16일에는 "평화 협상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하마스를 향한 압박 메시지를 던졌고 "이스라엘은 공격받은 당사자이며, 전쟁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그들의 결정"이라고 두둔했다.

루비오의 침묵 또는 지지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사례와 비교된다. 블링컨은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며 인도적 지원과 민간인 보호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지만, 루비오는 관련 사안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계자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1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가자지구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09.16. ⓒ 로이터=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트럼프는 올해 초 "전쟁을 끝내야 한다"며 네타냐후에게 책임을 일부 돌리는 발언을 했지만, 최근에는 "하마스는 죽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완전 점령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건 이스라엘의 결정"이라며 뒷짐을 졌다.

공화당 내에서도 네타냐후에 대한 비판은 드문 상황이다. 최근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을 "집단학살"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로, 당내 반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최근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보인 유일한 사례는 팔레스타인 아동의 기아 문제였다. 지난 7월 말,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더 많은 인도적 지원을 허용해야 한다며, 네타냐후의 "기아는 과장됐고 하마스가 식량 부족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이후 몇 주 동안 트럼프는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 대한 국제 구호단체들의 경고에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2박3일 일정의 영국 국빈방문을 위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2025.09.16.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바이든의 휴전 중재는 최종적으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24년 말 트럼프가 당선인 신분으로 성사한 휴전 협정의 토대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동 정책을 담당했던 일란 골든버그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는 휴전 합의를 이어받아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단계마다 네타냐후에게 백지수표를 줬다"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소극적인 접근은 곧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다음 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프랑스, 호주, 캐나다, 영국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인정할 계획이다.

이는 상징적인 조치지만, 이스라엘 내 우파 지도자들은 이에 격분해 요르단강 서안 일부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병합이 현실화할 경우,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이 구축해 온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당시 아브라함 협정을 중재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 간의 수교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이를 중동 평화의 성과로 자주 자랑하지만, 최근 상황은 그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협정에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지만, 가자 전쟁과 이스라엘의 병합 움직임은 그 가능성을 사실상 무산시켰다.

결국 트럼프는 이전의 외교적 성과를 모두 잃을 것인지, 아니면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제동을 걸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