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 인정 막기 위해 팔레스타인 비자 불허…유럽 국가들 반발

유럽 "국제법과 외교절차 위반"이라며 재검토 촉구
1988년 아라파트 비자 불허 당시 총회장소 제네바로 옮겨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팔레스타인 대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가자지구와 중동 상황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중 회의장 가운데 서서 다른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2024.08.13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내달 유엔총회를 앞두고 미국 국무부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소속 인사의 비자를 거부하거나 취소하고 있는데 대해 유럽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포함한 약 80명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며 입국을 막았다.

이번 유엔총회 기간 도중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국무부는 비자 불허 배경으로 PLO와 PA가 평화 전망을 저해하고 테러를 규탄하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않은 점과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에 이스라엘을 제소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번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에 외교적으로 중요한 무대였다. 캐나다·영국·프랑스·호주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 이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2년 가까이 이어진 가자지구 전쟁과 이스라엘의 강경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이 반영된 움직임이다.

미국의 일방적 조처에 유럽은 즉각 반발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회의 후 "미국의 결정이 재고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도 "유엔 총회에 대한 접근에 그 어떤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1947년 체결된 유엔본부 협정이다. 팔레스타인 측은 유엔 본부 소재국인 미국이 정당한 사유 없이 외교관의 총회 참석을 막는 것은 명백한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은 안보와 테러, 외교 정책 등을 사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PA는 "이번 조치가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킬 뿐"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환영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용감한 조처"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미국이 유엔총회 참석자의 비자를 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8년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PLO 의장도 비자를 거부당했다. 이 때문에 유엔은 총회 장소를 뉴욕이 아닌 스위스 제네바로 옮겨 회의를 진행했었다.

이번 사태로 미국과 유럽 동맹 간의 균열이 깊어지면서 중동 평화 해법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한편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최소 147개국은 이미 팔레스타인을 외교적으로 국가로 인정, 현재 팔레스타인은 유엔에서 바티칸과 같은 옵서버(참관국)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번 유엔 회의에서 실질적이고 법적인 국가로 인정되면 유엔 정회원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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