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노벨평화상? 노벨문학상도 가능하다[최종일의 월드 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연례 백악관 부활절 기념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5.04.21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태국과 캄보디아, 이스라엘과 이란,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인도와 파키스탄,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간의 분쟁을 종식시켰다. 임기 6개월 동안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평화 협정이나 휴전을 중재했다. 진작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했다"며 준비된 메모를 읽었다.

레빗에 앞서 같은 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고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무역 협상을 언급하며 "많은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말하지만, 그는 전 세계에 국제통상학을 가르쳤기에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진중하게 말했다. 경제학상은 경제 정책이 아니라 경제학이나 경제 이론에 기여한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나바로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백악관 참모들이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널리 알리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노벨상 수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참모들이 한 날에 노벨상 운운하니 백악관이 대놓고 로비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의 한 언론은 트럼프가 관세 세율을 적시해 각국에 보낸 "괴상한 서한"과 "히스테리성 트윗"을 언급하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트럼프의 참모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책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객관적인 조언보다는 충성심뿐인 듯하다.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맹목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높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자랑했던 미국의 관료제가 방향을 잃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현주소다.

백악관이 지난 7월 공식 소셜미디어에 트럼프를 슈퍼맨으로 묘사한 인공지능(AI) 이미지를 올리고 "희망의 상징, 진실, 정의, 미국의 길, 슈퍼맨 트럼프"이란 문구를 붙였다. 출처: 백악관 공식 엑스(X) 계정

백악관 대변인이 신념에 기초해서 한 발언이라면 더욱 큰 문제다. 비범한 주인공이 신비한 힘을 발휘해 악당을 몰아내면 평화가 찾아온다는, 식상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적합한 인식이 저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악관이 지난 7월 공식 소셜미디어에 트럼프를 슈퍼맨으로 묘사한 이미지를 올리고 "희망의 상징, 진실, 정의, 미국의 길, 슈퍼맨 트럼프"란 문구를 붙인 것은 그나마 '미국식 위트'로 웃어넘기고 싶을 지경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의 외교 문제는 시공간적으로 다층적이다. 수많은 주체의 이해관계와 국내외 정치 그리고 역사적 감정이 얽혀 있다. 힘겹게 이뤄낸 합의가 곧바로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레빗이 나열한 국가들의 분쟁은 어느 것 하나 단단히 해결된 것이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한바탕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가 멈춘 것이지, 누가 이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하겠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대화나 협상 등 비폭력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려 했고, 분열을 넘어서 통합을 추구했고, 인권과 인류에 대한 헌신을 보인 단체나 개인이다. 단기적 성과보단 오랜 기간 꾸준히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외교 정책 도구로서 강력한 압박과 위협을 사용하는 트럼프와는 거리가 있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은 국제적 명성에 대한 갈망,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라이벌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편으로, 자신이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과시해 지지층과 반대파 간 논쟁을 촉발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끌어오는 효과를 노린다는 진단도 있다. 민감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엡스타인 스캔들'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전환하려 했다는 것이다.

엡스타인 스캔들이 노벨상 이슈로 묻힐지는 미지수다.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가 불거지면, 전혀 다른 논쟁적 주제를 던지는 데 능한 트럼프의 손엔 여러 다른 카드도 있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는 각국 정상과 참모, 미 의원들의 노벨상 발언은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레빗의 노벨상 발언에 대해 바로 다음 날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는 스타가 됐다. 바로 그 얼굴과 그 두뇌 그리고 기관총인 양 움직이는 그 입술 덕분이야"라고 시적 표현을 동원해 탄복했다. 트럼프가 기대하는 게 정말 노벨'문학'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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