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차 관세서한 아시아 집중…"中 포위" 큰 그림 내보였다

'내수 부진' 中의 亞수출 확대 노력 저지하고 제조 공급망서 배제 의도
'무역불균형' 내세우지만…"아시아 국가들에 中과 美 사이 선택 강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레터'가 유독 아시아 국가들에 집중된 이유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 압박을 통해 미중 양국과의 관계가 모두 중요한 아시아 국가들에 역내 경제 대국인 중국과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 사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세 그물망으로 시진핑의 아시아 시장 활용 저지"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전역을 복잡한 관세 합의 그물망에 얽어 넣어 중국과의 긴장을 다시 고조시키려 한다"며 "경색된 수출 주도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아시아 시장을 활용하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변에 울타리를 쌓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상호관세를 명시한 서한을 총 14개국에 보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튀니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에 8월 1일부터 25~40% 사이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서한을 받은 나라 대부분이 아시아 국가다. 한국, 일본 등 역내 주요 경제국뿐만 아니라 태국, 캄보디아 등 여러 개발도상국에도 미국과의 무역 합의 압박을 강화하고 나섰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이코노미스트는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일시적 무역 전쟁이 아니다"라면서 "세계 최대 경제 대국 간의 훨씬 깊고 지속적인 패권 경쟁의 징후"라고 분석했다.

유일 합의 베트남에 '환적' 관세…대중 압박 속내

아시아 개도국 중 베트남만 1차 상호관세 유예 시한(7월 9일) 전 미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했다. 베트남에 대한 관세는 당초 46%에서 20%로 내렸지만 '환적' 상품에는 40%를 책정했다.

베트남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국가들과 맺으려는 관세 합의가 최종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단서를 준다. 향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여타 개도국과의 합의에도 대중 압박 강화를 위한 베트남식 요구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전격 발표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을 본보기로 세운 배경에는 지난 몇 년 사이 베트남의 중국산 수입과 미국행 수출이 동시에 급증한 사실이 있다.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환적 제품은 주로 중국산이다.

중국은 국내 소비 둔화 타개책의 일환으로 수출 확대에 공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과잉 생산과 공급 과잉이 불거졌는데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대미 수출이 폭삭 주저앉자,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이 더욱 긴요해졌다.

중국은 아시아 개도국 길들이기 전략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60억 달러 규모의 니켈 채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합작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트럼프가 진짜 원하는 건…"中 배제한 제조 공급망"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세 분쟁에서 겉으로는 불공정한 대미 무역 흑자를 내세우지만, 속내는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는 국가들을 표적으로 삼아 중국을 '징벌'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는 사실상 중국과 세계 최대 소비 경제국인 미국 사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며 실행에 옮기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도체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 수십년간 반도체 생산을 장악해 왔지만 공급망은 극도로 복잡하고 전문화돼 있다. 일본에서 원자재와 장비를 수입하고 실험실은 말레이시아에, 공장은 중국에 두는 식이다.

대만 싱크탱크 중화경제연구소의 셴민 롄 소장은 "미국이 사실 원하는 건 이들 국가와 무관세나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아니다"라면서 "트럼프가 진정 원하는 건 중국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는 제조 공급망 구축"이라고 말했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