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개혁 설계자' 주룽지 전 총리 별세…향년 98세

국유기업·금융·세제 대수술 이끈 '경제통'…中 WTO 가입 주도
외환위기 때 위안화 절하 거부…거침없는 화법·부패 척결도 유명

주룽지 전 중국 총리. <자료사진> 2012.11.8. ⓒ 로이터=뉴스1

(서울·베이징=뉴스1) 장용석 기자 정은지 특파원 =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대표적인 개혁파 경제관료 주룽지(朱鎔基)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이날 공동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중국 현지시간·한국시간 낮 12시 6분) 베이징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주 전 총리를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1928년 10월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주 전 총리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58년엔 정치적 비판을 받아 국가계획위원회에서 밀려났고 '문화대혁명'(1966~76년) 시기엔 간부학교로 내려가 노동하기도 했다. 이후 1979년 경제관료로 복귀한 그는 국가경제위 요직을 거쳤다.

주 전 총리는 1987년 상하이시 당 부서기와 시장을 맡으며 중앙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상하이시 당서기를 거쳐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올랐고, 1993년부터 중국 런민은행 총재를 겸임하며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당시 중국 경제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고속 성장하는 동시에 물가 급등과 과잉투자 등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 전 총리는 긴축과 금융·재정 개혁을 추진해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 이른바 경제 '연착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3월 국무원 총리에 취임한 뒤엔 국유기업과 금융, 세제, 주택, 사회보장 등 중국 경제 전반에 걸쳐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그는 적자 국유기업을 폐쇄하거나 구조조정하고 현대적 기업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유기업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자 실업보험과 도시 최저생활보장 등 사회안전망 확대도 추진했다.

주 전 총리의 중앙·지방 세수를 재조정하는 분세제 개혁과 금융기관 개혁, 외환제도 개편 등을 통해 현재 중국 시장경제 체제의 기본 틀을 구축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뒤엔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아시아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 주요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 전 총리의 대표 업적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WTO 가입이다. 그는 총리 재임 기간 WTO 가입 협상을 주도하며 시장 개방과 경제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중국은 장기간 협상 끝에 2001년 12월 WTO에 가입했고, 이후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무역 대국으로 급성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주 전 총리가 중국 경제를 현대화한 대표적인 개혁가로 평가받았다"며 "중앙계획경제의 유산을 정리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보였다"고 전했다.

주 전 총리는 생전에 강한 추진력뿐 아니라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유명했다. 1998년 총리 취임 직후 회견에선 앞으로 놓인 게 "지뢰밭이든 만 길 낭떠러지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취지로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부패와 관료주의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여 중국 안팎으로부터 '강단 있는 경제관료'란 이미지를 얻었다.

다만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시장 중심의 경제개혁이 빈부격차와 지역 격차를 확대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주 전 총리는 2003년 3월 원자바오에게 총리직을 넘긴 뒤 정치무대에서 물러났다.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그는 퇴임 후 공개 활동을 크게 줄인 채 지냈으나, 당의 반부패 정책과 중국의 경제·사회 발전엔 지속 관심을 보여왔다.

ys417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