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남긴 그곳인데…中베이징서 사라지는 독립운동 흔적

베이징 독립운동사적지 26곳…실제로는 100여개 추정
이회영·신채호 등 베이징서 활동…표지석·기념비는 '전무'

베이징 둥청구 둥창후통 28호 모습. 중일전쟁 이후 일본영사관 헌병대 지하 감옥이 있던 곳으로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민족시인인 이육사가 순국한 장소다. 2026.7.2 ⓒ 뉴스1 정은지 특파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중국 베이징에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2일, 베이징 둥청구 둥창후통 28호를 둘러보고 있을 때쯤, 이곳의 관계자는 방문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선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베이징 도심에 있는 많은 후통 중에서도 둥창후통 28호는 중일전쟁 이후 일본영사관 헌병대 지하 감옥이 있던 곳이다. 이곳이 우리 역사에 의미를 갖는 것은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민족시인인 이육사(1904~1944·본명 이원록)가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광야'는 1943년 일제 관헌에게 체포돼 중국으로 압송되는 기차간에서 구상해 베이징 지하감옥에 갇혀서 마분지에 썼는데, 그가 순국한 후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도 알려진다. 또 다른 대표작 '꽃' 역시 이 과정에서 발견됐다.

조선의용대원 이원대(마덕산)도 베이징과 허베이성 일대에서 초모활동을 하다 체포돼 스자좡 수용소를 거쳐 베이징 헌병대 감옥으로 이감됐다 1943년 6월 17일 이 곳에서 순국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 겨우 찾은 둥창후통 28호지만, 이 곳에서 이육사가 순국했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베이징 둥청구 둥창후통 28호 내부 모습. 현재는 리모델링 후 군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2026.7.2 ⓒ 뉴스1 정은지 특파원

열려있는 문으로 진입한 내부에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시설과 함께 둥창후통의 변천사가 소개된 사진 정도만 남아있었다. 몇 년 전 리모델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건물 외곽엔 '군대 아파트 주거 관리 관련 규정'이 적혀 있었다. 다만 기념비 또는 이 곳을 알리는 표지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분간 이 곳을 둘러봤을 때쯤, 한 남성이 나와 퇴거를 요청했고, 이내 이 곳의 문이 굳게 닫혔다. 문 앞에는 '문을 살살 닫아주세요' 문구만 남았다.

베이징 독립운동 대표 유적 중 한 곳인 창관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베이징동물원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15위안(약 3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베이징동물원 내에 위치한 창관루는 1927년 4월 17일~6월 22일 \'군사통일회의\'를 개최했던 장소다. 2026.7.2 ⓒ 뉴스1 정은지 특파원

이 곳에 소재한 창관루는 1927년 4월 17일~6월 22일 '군사통일회의'를 개최했던 장소다.

'군사통일회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선에 비판적이고 군사통일을 통한 직접적인 독립전쟁만이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각지의 군사단체 대표가 모여 군사통일 방침과 군사행동의 계획 등을 논의한 회의다.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가 수립될 무렵부터 임시정부의 외교독립 노선에 반발한 독립운동가들은 1920년을 전후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1920년 9월 초 박용만, 신숙, 신채호, 이회영 등 15인이 지속가능한 독립전쟁의 완성을 염원하며 '군사통일촉성회'를 발기했고 이듬해인 '군사통일주비회'를 시작으로 본격적 회의를 시작했다.

다만 현재는 베이징동물원의 유적 일부로서 1층은 동물원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20년대 베이징에 이회영, 김창숙, 신채호 선생을 주축으로 안창호, 조소앙 등 독립 투사들이 머물거나 거쳐 간 만큼, 이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베이징 내에는 손정도 목사에 의해 처음 조선어 예배가 시작된 충원먼탕(숭문문당),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단이 '미의원동아사찰단'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던 육국호텔(현 화펑빈관) 및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회영 선생의 두번째 집으로 추정되던 곳, 단재 신채호 선생이 거주하던 곳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 기록된 베이징 사적지는 26곳에 달한다. 이는 임시정부 주류로 분류되는 상하이(27곳)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베이징의 독립운동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은 베이징은 외교 중심의 상하이와 달리 무장항일을 내세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곳에 있는 사적지 모두 한국 독립운동 관련 표지석이나 기념비가 없다는 것이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 측 설명이다.

사업회 관계자는 "베이징에 있는 사적지 대부분은 흔적이 사라진 상태로 과거 자료 등을 통해 '이쯤 어디겠다'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며 "실제 베이징에는 100여곳의 사적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