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핵군축조약 만료에 中 '핵증강' 명분삼기…"기존 질서 붕괴"

軍기관지 "미러 '통제가능 균형'에서 '통제불능 경쟁'으로"…美에 책임 전가
中 '기술굴기' 반영한 새 군축 질서 모색할 수도…"패러다임 전환 시급"

9월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2차 세계대전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 소속 병사가 전략 타격 부대가 전시한 DF-5C 핵미사일 옆에 서 있다. 2025.09.03. ⓒ 로이터=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미국과 러시아의 마지막 핵 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5일(현지시간) 만료되면서 핵 전력 증강에 힘을 쏟아온 중국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미·중·러 3개국의 핵 군축 조약 체결을 원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체급'이 다르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뉴스타트 연장 제안을 거부한 미국에 책임을 돌리고 강대국 간 군비 증강 경쟁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자국의 핵 전력 증강 움직임을 위한 명분으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판지서 중국 중앙당교(국가행정학원) 국제전략연구원은 5일 군 기관지인 해방군보에 기고한 글에서 "미러 간 유일한 핵 군축 조약이 종료됨에 따라 미러 간 게임은 '통제 가능한 균형'에서 '통제 불능 경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판 연구원은 "전 세계 핵무기의 약 90%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핵군축 의무를 포기하면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글로벌 핵 확산 위험이 커질 것"이라며 "기존의 국제 핵 질서는 붕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는 핵 군축의 특별하고 우선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고 협상을 통해 군비 통제 조약을 체결해 핵무기의 점진적 감축을 진정으로 실현해야만 글로벌 안정과 안전을 진정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뉴스타트는 양국이 실전 배치 전략 핵탄두 수를 1550기로 제한하고, 3대 핵 투발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를 총 70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조약 만료에 따른 핵 질서 붕괴 위험의 배경에 미국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군사전문가인 쑹중핑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핵 통제 합의는 미국에 달려 있다"며 "미국은 핵무기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핵 우위와 다른 국가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을 핵 군축 협상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미국의 요청에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중·미의 핵 역량은 완전히 같은 체급이 아니다"라며 "현재 단계에서 중국이 핵 군축 협상에 참여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중국이 핵전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반응이다. 중국이 미국,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까지 핵전력 증강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제안된 '제15차 5개년 계획'에는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선진 전투력 건설을 가속화하고 군사 관리의 현대화를 추진하며 일체화된 국가 전략 체계와 능력을 공고히 하고 향상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스웨덴 스톡홀름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러시아와 미국은 각각 5459기, 5177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의 핵탄두는 약 600개로 추정되며 미국은 중국의 보유량이 2030년 1000기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핵군축 협상에 나설 경우 자국의 첨단 기술 발전상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군사 전력 구도를 감안해 중국 주도의 군비 통제 구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기존 '핵탄두' 갯수만 세는 낡은 논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장자둥 중국 푸단대 미국연구센터 교수는 최근 중국 환구시보와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국제 군비 통제 체계는 미러간 협정과 조약이 글로벌 핵 질서의 주요 '규칙'이라는 암묵적 전제 위에 마련된 것"이라며 "종합적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한때 핵무기는 최고의 억제 효율성과 전략적 위치를 차지했으나 인공지능(AI)이 지원하는 우주 무기와 사이버 무기의 도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며 "세계가 직면한 것은 더 이상의 단순한 핵 군비 경쟁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군비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군비 통제는 종합적 안보 관리의 범주로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안전을 박탈함으로써 자신의 절대 안전을 구축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 AI, 네트워크 통신 등 분야의 신기술이 전략적 억제의 기본 논리를 바꾸고 있는 만큼 군비 통제를 다자간의 공동 참여의 '관리'로 업그레이드하고 더욱 안정적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글로벌 안보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