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한한령 해제' 해제하기

정은지 베이징 특파원. ⓒ News1
정은지 베이징 특파원. ⓒ News1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이재명 대통령이 내달 초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다시 나온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10월 한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속도감 있게 한중 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된다는 것은 최근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는 한중 관계에 더욱 기대감을 품게 한다.

한중 관계 훈풍은 베이징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말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을 대상으로 충칭 탐방 행사를 개최해 충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현지 기술 기업, 충칭 관광 자원, 임시정부 청사, 광복군 총사령부 유적 등을 소개했다. 중국 외교부에서 중국 주재 한국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행사를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후 '중국 정부의 입'인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자신의 X 계정에 충칭 취재 활동 등의 사진과 함께 한글로 "충칭에서 한국 기자분들이 뜻깊은 경험을 하고 갑니다"라고 적어 눈길을 끌었다.

한중 관계 회복을 상징할 조치로 한국 가수들이 중국에서 대규모 공연이 가능해지거나 한국 콘텐츠의 중국 내 방영이 재개되는 한한령 해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방중 계기 한국 아티스트가 참석하는 공연을 추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기대가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현실화하면 한중 관계 개선이 강력한 힘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한중 관계 측면에서 우리가 한한령 사안을 너무 과하게 신경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애초에 중국에서 한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는 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중국 내 한한령이 한국의 '핵심 이익'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 가수들이 광활한 중국 시장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이 공연할 수 있게 되면 막대한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수많은 케이팝 그룹들의 세계적 인기와 올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증명했듯 중국 시장 없이도 케이팝과 케이 컬처는 이미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 시장에 의존·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한령이 세계로 뻗어나간 케이팝에 준 선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자동차 등 글로벌 산업계에서 중국 시장에 지나치게 의지했다가 미래로 나아갈 기회를 놓치고 피눈물을 흘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더구나 지금도 중국 내에선 한국 가수들의 대규모 공연까진 아니라도 상업 행사나 팬사인회 같은 소규모 프로모션은 열리고 있다. 최근 베이징 중심에 위치한 미니소랜드에선 한국 아이돌그룹 엔하이픈의 대규모 팝업 매장이 열렸는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한 청년은 기자에게 지난달 홍콩에서 개최된 CJ ENM의 케이팝 시상식 '2025 MAMA AWARDS'(마마 어워즈)를 거론하며 "더우인(틱톡 중국버전)을 통해 생중계를 관람할 수 있었다"면서도 "스트리밍이 자꾸 중단돼 원활하게 시청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그렇게 막아도 중국 내 한국 콘텐츠의 꾸준한 수요가 이어진다. 반대로 중국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선택 가능한 콘텐츠가 줄어 고생하고 있다. 즉 한한령 해제는 중국 소비자들의 문화 경험을 늘리고 중국 정부가 그렇게 기대하는 새로운 내수 시장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대만 가수 출신으로 중화권 스타인 저우제룬(주걸륜)이 중국 지방도시에서 콘서트 1회를 개최할 때마다 경제적 효과는 최소 10억 위안(약 2000억 원)에서 많게는 30억 위안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외부 자극이 인위적으로 차단된 중국 문화 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한한령 해제는 한중 관계 회복·발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정류장의 하나일 뿐이다. 꼭 그 정류장에 멈추지 않아도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류장 근처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살 것 같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