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청년 홀린 다카이치 총리 '트럼프식 소통술'[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10월 21일 일본의 제104대 총리에 오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64)의 지지율이 70%를 웃돌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 나온 71%는, 내각 출범 시 기준으로 역대 5위에 해당한다. 직전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지지율이 절반 수준인 34%란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얼마나 높은 지지를 받는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세대일수록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이시바 내각의 경우엔 연령이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간 자민당 지지율 역시 이 같은 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가 정치 무관심층인 청년층에서 받은 지지는 이례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노년층에선 이시바 전 총리를 소폭 앞서지만 18~39세에선 5배 더 높은 수치(80% 대 15%)를 보였다. 일본 방송 FNN 조사에선 18~29세 지지율이 무려 89.1%를 나타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에선 '여자 아베' '극우 정치인'으로 주로 인식되지만 일본인들이 그를 보는 시각은 한국에서와 사뭇 다르다. 청년층 인기의 비결로 일본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전략적 소통술'이다. 일본의 유명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연구가 오카모토 준코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이 시대 최고의 화자(話者)"라며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규칙을 알고 전략적으로 발언한다고 평가했다. 소통술은 △공포 등 감정 자극 △미소를 잃지 않는 태도 △선명한 보수·국가주의적 정치관 △적극적인 소셜미디어(SNS) 사용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위기를 강조하고 공포를 자극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리곤 자신을 문제 해결의 적임자로 내세운다. 지난 21일 총리 취임 연설에선 "일본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라거나 "내각의 성장 전략 핵심은 위기관리 투자"라고 역설했다. 이전에서도 수치를 제시하며 "우리의 생활 모든 장면에서 위협이 있다"라거나 "새로운 전쟁",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 등을 빈번하게 언급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강조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취임식 연설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강력하게 보여줬다. 그는 "미국의 살육(American carnage)"이란 표현을 써서 미국 사회를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극단적인 암흑 상태로 규정했다. 유세 현장에선 미국을 "지옥 같은 상태"라고 묘사했다. 좌파 진영의 정책과 이념이 미국을 "파멸"로 이끌고, 주요 도시들엔 "범죄와 갱단, 마약이 넘쳐난다"며 자신을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내세웠다.
일본인들이 받아들이는 총리의 이미지엔 미소가 큰 역할을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어조는 강하지만 화난 표정을 잘 짓지 않는다. 분노를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에 '미소'를 큰 무기로 삼는다. 특히 눈웃음은 강한 어조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여성 리더로서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균형점을 잘 찾는다고 평가받는다.
강한 어조에 담긴 메시지도 강경하다. 헌법 개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중 및 대북 강경 자세를 주장하며, "일본의 자긍심"을 지키려 한다고 강조한다. 논리로 무장한 정책 설명보다는 감정을 유발하는 연설로, 정서적인 측면을 건드려 핵심 지지층의 자긍심을 자극하고 이들을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지자들은 "진심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SNS)도 적극 사용한다. 다카이치 총리의 팔로워는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53만명,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82만명,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20만명에 불과하다. 짧은 영상이나 한 줄 트윗으로 정책을 어필하는 스타일이 젊은 층에 어필했다. 총재 선거에 나와서는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이 같은 소통술이 청년층에서 크게 먹혀들었다.
핵심 지지층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높은 지지율이 나온다면 다카이치 총리는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로선 관심 사항은 다카이치 총리가 극우의 발톱을 꺼내들지 여부다.
자민당은 지난 25년 이상 지속돼 온 공명당과의 연립에서 벗어나, 더 오른쪽에 있는 일본유신회와 손잡았다. 자민당 우경화에 공명당이 브레이크 역할이었다면, 유신회는 가속페달이다. 더욱 극우화된 아베식 정치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가 뼛속 깊은 곳에서까지 '극우 정치인'인가에 대해선 이견도 있다. 일본 정치의 중심에 서기 위해 극우적 언동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총리까지 오른 만큼 정치적 자세를 바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총재 선거 도중 극우적 언행을 중단했다. 지난 17일 시작된 야스쿠니 신사 추계예대제(정기 가을 제사)엔 총리 취임 전이었지만 참배를 보류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둔 시점에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을 수 있고, 일본이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단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본 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혹은 핵심 지지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언제든 극우적 정책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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