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나는 日다카이치…최대 과제는 790조원 대미투자 청구서

트럼프와 28일 회담…미일 무역합의 세부내용 놓고 논란 여전
방위비 증액 압박에도 대응해야…동맹 관리하면서도 국익 관철해야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하루 앞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취임과 동시에 거대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 전임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남긴 5500억 달러(약 79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가 미국에 파견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은 여덟 차례나 워싱턴을 오간 끝에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합의에 따르면 일본은 24%에 달할 뻔했던 대미 수출품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5500억 달러를 미국 내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협상의 세부 내용은 일본에 상당히 불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이 투자 대상을 선정하면 일본은 45일 이내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은 관세를 다시 올릴 수 있다.

심지어 일본이 투자 원금을 회수한 뒤 발생하는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가는 조항까지 포함돼 일본 내에서는 '경제적 노예 계약'이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다카이치 내각이 이 협상을 주도한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을 경제산업상으로 옮겨 여전히 관세협상 임무를 맡긴 것을 두고 의외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카자와는 협상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등 의도적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한 인물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 이 협상 결과를 비판했는데도 그를 유임시킨 건 트럼프 행정부를 의식한 현실적 선택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의 고민은 깊다. 그는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에서 "미일 무역 합의에 불평등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후보자 중 유일하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총리 취임 이후에는 재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취약한 연립정권을 이끄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결국 다카이치 총리는 28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미 투자 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도 대응해야 하는 다중고를 겪게 됐다.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정의 세부 실행계획보다는 헤드라인에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이 투자 약속을 지키면서도 국익을 관철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반면 마키하라 이즈루 도쿄대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며 그의 멘토였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미 외교술'을 따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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