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즐기는 日다카이치 총리…"韓 기어오른다"던 아베걸

아베의 정치적 후계자…야스쿠니 신사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 비판
앵커 출신에 오토바이 애호…3번째 도전 끝에 총재 당선돼 총리 올라

일본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자민당 총재 당선자 다카이치 사나에가 4일 당 대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64) 일본 자민당 총재가 21일(현지시간) 임시국회에서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되며 일본 최초 여성 총리로 등극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별칭이 '여자 아베'일 만큼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계승자로 꼽히는 대표적인 강경 보수 정치인이다.

무파벌을 표방하지만 아베가 이끌던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몸담은 이력이 있다. 2006년 1기 아베 내각에서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2014년 2기 아베 내각부터 제18대·제19대·제23대 총무상을 지내며 최장수 총무상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21년과 2024년에는 당 총재 선거에 출마해 각각 기시다 후미오와 이시바 시게루에게 패배했고 2025년 3수 끝에 총재 자리를 거머쥐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가 15일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후 웃으면서 장소를 떠나고 있다. 2025.10.15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다카이치 총리는 1961년 나라현에서 태어나 고베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진보 성향 아사히TV를 거쳐 보수 성향 후지TV 앵커로 활동하다 1993년 정계에 입문했다.

대학 시절에는 헤비메탈 밴드 드러머로 활동했다. 블랙 사바스나 아이언 메이든 같은 밴드의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연주에 몰입해 드럼스틱을 자주 부러뜨렸고, 10선 의원이 된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집에서 드럼을 친다고 한다. 오토바이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정계에 입문하기 직전까지 그는 가와사키 Z400GP 등을 타고 거리를 질주했다.

결혼 이력도 특이하다. 2004년 43세의 나이로 자민당 동료 야마모토 다쿠와 결혼했다. 요리사 자격증이 있는 야마모토가 "평생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7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이혼했다가 2021년 12월에 극적으로 재결합했다. 특히 재혼 과정에서 남편 야마모토가 다카이치의 성을 따라 '다카이치 다쿠'로 개명해 화제가 됐다. "부부가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신념을 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현한 것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남편이 전처에게서 얻은 세 자녀를 입양해 법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해 왔다. 올해는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신체 오른쪽이 마비되자 바쁜 정치 활동 중에도 남편을 직접 병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일본유신회 대표(왼쪽)와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20일 연정 구성 합의를 체결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10.20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을 향한 강경 발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22년 한 극우단체 강연에서 그는 한국과 중국을 겨냥해 "우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중간에 그만두는 등 어정쩡하게 하니까 상대(한국)가 기어오르는 것(つけ上がる)"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관련된 문제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려는 수정주의 역사관도 공개적으로 드러내 왔다. 2004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의 과거사 사죄 담화(무라야마 담화)를 정면 비판하며 "과거 지도자의 잘못을 현 총리가 사과할 권리가 있냐" "국민적 논의도 없이 마음대로 대표해서 사과하면 곤란하다"고 따져 물었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는 독도 문제에 관해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며 "장관급 인사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유권 주장을 노골화했다.

반이민 성향 유권자들을 의식한 듯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발언으로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달 외국인 관련 정책을 설명하며 "나라현의 사슴을 발로 걷어차는 외국인 관광객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나라현 당국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슴을 때리거나 발로 찼다는 목격자 진술이 접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자민당 총재로 등극한 후에는 외교적 파장을 우려했는지 지난 17일 야스쿠니 신사 추계 예대제 때는 참배하지 않았다. 대신 측근 의원들이 대거 참배에 나섰다. 후루야 게이지 선거대책위원장은 다카이치 총재로부터 "내 생각도 명심해 참배하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사실상 대리 참배를 했음을 시사했다.

역사관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오사카 주재 한국 총영사와의 만남에서 다카이치는 "한국을 좋아한다. 한국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한일관계 발전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팝 가수들의 팬을 자처하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 불고기 등 한식을 즐긴다고도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가 21일 열린 임시국회에 출석해 총리 지명 선거를 대기하고 있다. 2025.10.21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은 일본 정치 지형의 본격적인 우경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자민당은 26년간 연정을 함께한 중도 보수 성향 공명당을 떠나보내고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 재무장을 주장하는 강경 보수 성향 일본유신회와 손잡았다. 다카이치 내각이 전보다 훨씬 선명한 보수 색채를 띨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존경하는 인물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꼽은 바 있다. 제2의 '철의 여인'을 표방하기는 하지만 여성 인권 관련 정책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기혼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의무화한 19세기 법을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성 총리의 탄생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CNN 방송은 "가부장적인 성별 규범이 깊이 뿌리내린 나라에 이정표적인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그가 추진하려 하는 확장 재정 정책이 고물가와 엔저를 가속화해 일본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가 지출확대와 감세를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지지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프 킹스턴 도쿄 템플대 교수는 BBC 방송 인터뷰에서 "다카이치는 일본의 대처를 자처하지만 재정 규율 측면에서는 대처와 전혀 다르다"며 "대처처럼 정치·사회 분열을 치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성의 권한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past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