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석유 수출 '제로'에도 버티는 이란…"50년 제재 경험 유효"
권위주의 정치 체제·시위 탄압으로 봉쇄 효과 억눌러
제재 회피도 계속…이란 버틸수록 美 봉쇄 비용 유지 부담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미국 주도의 대(對)이란 봉쇄와 제재에도 이란은 굴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 50년에 걸친 서방 제재 경험 속에서 대처 방법을 학습한 이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인내심이 바닥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5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케이플러(Kpler)는 지난달 이란이 자국 항구에서 원유를 단 한 방울도 선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 케이플러가 이란 수출 감시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마지막 선적은 8월 25일이었다.
미국 봉쇄 구역 밖에 남은 이란산 석유는 7월 1억 배럴에서 4500만 배럴로 급감했고, 현재 속도라면 이달 말 팔 물량이 바닥난다.
반대로 육상 재고는 7000만 배럴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정점에 근접했다. 생산량은 전쟁 전 절반 수준인 하루 200만 배럴로, 내수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이다.
미국 제재가 이란 경제에 가한 타격은 경제 지표로도 드러난다. 이란 정부 자료 기준 3~6월 이란 경제는 연율 10% 역성장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90%, 최근 1년 평균은 73%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다.
반(半)관영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최고 안보기구인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수장인 모흐센 레자이 사무총장조차 이란의 경제 상황이 역사상 최악 수준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50년간의 제재 경험과 잔혹한 시위 진압이 체제를 경제 충격으로부터 차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아드난 마자레이는 이란인들은 현금이 생기면 곧바로 생필품에 쓴다고 지적했다. 그러지 않으면 돈의 가치가 즉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란의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와 무자비한 시위 탄압은 봉쇄와 제재의 효과를 어느 정도 억누르고 있다.
마자레이는 "경제는 매우 나쁘지만 '환자의 체온이 임계치에 닿았으니 곧 사망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기계적 지점은 없다"며 "이 체제는 자국민의 고통에 대한 인내심과 내성이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제재 회피도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케이플러의 정책·지정학 리스크 책임자 미셸 브루하드는 "이란은 자원 없이 나라를 굴리는 데 능하다. 변곡점에 왔다고 보지 않으며, 어딘가에서 자금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로를 통한 카자흐스탄·러시아 수송, 카스피해 경유, 이라크산 위장, 선박 간 환적, 주변국 수탁자를 통한 달러·암호화폐 결제 등이 회피 통로로 거론된다.
걸프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항하는 대가로 이란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으나 확증은 없다.
핵심 변수는 현상 유지 비용이다. 미 해군은 봉쇄와 호위에 자원을 쏟아부으며 납세자에게 수백억 달러를 전가하고 있다.
클락슨스 시핑 앤드 마리타임 서비시스에 따르면 인건비와 연료비, 보험료 등을 합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용선료는 하루 160만 달러(약 21억 4800만 원)로 2025년의 24배다.
브루하드는 "지금 통행료는 보험사가 받고 있고, 그 값은 당신과 내가(최종 소비자) 치른다"고 말했다.
이란은 석유 시장 지렛대를 잃었지만, 값비싼 노선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마자레이는 "우리는 오랫동안 전쟁의 문턱에 서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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