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상…평화가 낯선 이 나라[최종일의 월드 뷰]

수단 동부와 접한 차드 와디피라주에서 2025년 11월 30일, 수단 난민 여성들이 난민캠프에서 이동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수단 동부와 접한 차드 와디피라주에서 2025년 11월 30일, 수단 난민 여성들이 난민캠프에서 이동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물결 속에서 이 나라는 독립했다. 1956년 1월, 수도의 대형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운집해 축제를 벌였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1차 내전은 17년간 이어져 약 50만 명, 제2차 내전은 22년간 이어져 약 200만 명이 희생됐다.

끝내 남부 지역이 분리독립했지만 평화는 여전히 저 멀리 있었다. 또 다른 지역 분쟁으로 약 30만 명이 희생됐고, 2023년부터는 전면적인 내전이 다시 벌어졌다. 떨어져 나간 나라도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내전이 이어져 약 40만 명이 사망했다.

그야말로 '일상이 전쟁'인 비극의 땅, 아프리카 북동부의 수단과 남수단 얘기다. 고통의 시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수단과 남수단에서는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수천만 명에 이른다. 1950년대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라면, 전쟁은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삶을 끊임없이 짓눌렀다.

식민지 경계가 낳은 분열, 남수단의 독립과 내전

이 비극의 뿌리는 독립 이전의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영국·이집트의 공동통치가 시작됐다. 실제 행정은 영국이 주도했다. 서로 다른 종족이 존재하던 공간을 식민지 지배 세력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었다. 북부는 아랍계·무슬림이 중심이었고, 남부는 아프리카계와 기독교·전통 신앙이 중심이었다. 영국의 차별적 통치 과정에서 남부에서는 북부 중심 정부의 지배와 이슬람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컸다.

식민지 시대의 경계는 독립 이후 수단의 국경이 됐다. 독립을 앞두고 남부에서 발생한 반란은 제1차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다. 1972년 평화협정으로 남부에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면서 일단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10여 년 뒤 갈등은 다시 폭발했다. 당시 수단 정부가 남부의 자치권을 축소하고 이슬람 율법을 도입하면서 남부의 저항이 거세졌다.

남부에서는 다시 무장투쟁이 시작됐고 제2차 내전이 벌어졌다. 2005년 1월 수단 정부와 남부의 반군 세력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이 협정의 핵심은 남부에 6년간 자치권을 부여한 뒤 2011년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1년 7월 남수단은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으로 수단에서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은 빠르게 휘발됐다. 오랜 세월 수단 정부에 맞서 싸웠던 무장세력 수단인민해방군(SPLA) 내부에는 깊은 권력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던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은 출신 부족이 달랐고, 두 사람의 권력투쟁은 결국 내전으로 확대됐다.

2016년 7월 26일 남수단 주바의 대통령궁에서 새로 임명된 타반 덩 가이 남수단 부통령(왼쪽)과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오른쪽)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하면서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약탈 등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2018년 두 사람은 다시 권력을 나누기로 합의했고, 2020년 통합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군대 통합과 헌법 제정, 지방 권력 배분 등 핵심 약속은 계속 지연됐다. 최근에는 두 세력의 관계가 다시 급격히 악화하면서 내전의 먹구름이 다시 드리웠다.

남수단은 산유국으로 매장량이 약 35억 배럴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하지만 만성적인 부패와 내전으로 인한 시설 파괴, 투자 부족, 원조 의존 등으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도적 위기가 심각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특히 석유는 남수단 경제와 정부 재정의 핵심이다. 이 같은 높은 의존은 석유 수익을 둘러싼 권력투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권력 다툼과 군부 충돌, 다시 내전에 빠진 수단

수단의 상황도 남수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 1956년 독립한 수단은 한반도의 8배가 넘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였지만, 국가를 하나로 묶는 힘은 매우 취약했다. 정치·경제·군사 권력은 북부와 중부 엘리트에게 집중됐고, 서부 다르푸르와 남부·동부 등 주변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이 같은 지역 간 격차와 갈등은 결국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2003년 서부 다르푸르에서 반군이 등장하자 수단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아랍계 민병대를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과 마을 파괴, 강제이주 등이 발생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다르푸르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당시 정부가 활용했던 아랍계 민병대 가운데 일부 세력을 기반으로 2013년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이 창설됐다. 신속지원군은 이후 독자적인 군사·경제 기반을 구축하며 정규군인 수단군(SAF)에 버금가는 무장세력으로 성장했다.

수단에서는 1989년부터 오마르 알바시르가 장기 집권했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2019년 4월 결국 축출됐다. 이 과정에서 수단군 지도부가 바시르 정권을 버리고 축출에 나섰고, 신속지원군도 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바시르 정권이 무너진 뒤 두 세력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했다. 핵심 쟁점은 신속지원군을 정규군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편입할 것인지, 그리고 통합된 군대의 지휘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였다. 권력을 놓고 대립하던 두 세력은 결국 2023년 4월 정면충돌했다. 수단은 또다시 전면적인 내전에 빠져들었고, 유혈 충돌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1월 2일 수단 옴두르만의 한 병원 밖에서 수단군 병사가 군용 픽업트럭 위에 설치된 기관총을 지키고 있다. ⓒ AFP=뉴스1
식민지배의 유산, 독립 이후에도 이어진 비극

유럽의 식민지배는 기존 사회의 발전 경로를 끊고 국가의 영토와 행정 틀을 재편하면서 근대국가 형성의 경로를 왜곡했다. 통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국가 구조와 지역 격차가 갈등의 출발점이었다면, 이후 비극을 확대시킨 것은 독립 이후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투쟁과 취약한 국가제도였다.

식민지배가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남긴 깊은 생채기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식민지배가 남긴 국경과 사회적 분열의 흔적은 독립 이후에도 정치적 갈등과 국가 통합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수단과 남수단의 비극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가를 세우고 통합을 이루며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allday33@news1.kr